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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트럼프 신고립주의에 안보 실익 지켜야/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시론] 트럼프 신고립주의에 안보 실익 지켜야/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입력 2016-12-29 22:18
업데이트 2016-12-29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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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미국 대선 승리는 그동안 글로벌 표준으로 받아들여져 왔던 기존 정치 체제와 경제·사회 정책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잘 보여 준 사건이다. 무역 자유화, 글로벌 협력 등을 앞세워 추진해 온 ‘세계화’에 대한 반대 의사가 명확하게 드러난 만큼 이를 표준 삼아 추진해 왔던 통상·외교 정책에도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아직 차기 정부가 출범하기 전인 만큼 트럼프 행정부의 공식적인 통상·외교 정책 방향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지난 대선 캠페인 기간 거듭 강조했던 공약들과 지난 두 달간의 발언이나 행보들을 바탕으로 몇 가지 특징적인 윤곽은 그려 볼 수 있다. 그중 대표적인 원칙 두 가지로 ‘미국 우선주의’와 ‘신고립주의’가 꼽힌다.

이번 대선 직전까지만 해도 ‘세계화’가 퇴조하고 ‘미국 우선주의’, ‘신고립주의’ 등과 같은 반세계화 성향의 공약들이 다수의 지지를 얻으리라고 예상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세계화 덕분에 해외의 값싼 제품을 대량으로 소비할 수 있게 됐다는 실증적 사실과 별도로, 다수의 선거구에서는 “세계화의 혜택이 국민 다수에게 골고루 배분되기는커녕 일부 유망 산업 종사자들과 여성, 이민자, 외국인 등에게 편중됐다”는 트럼프의 주장에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특히 미 중부의 러스트벨트 지역을 비롯해 여러 지역의 제조업 종사자들이 불만 제기에 앞장섰다. 차기 트럼프 행정부는 이런 불만 여론에 답하기 위해 통상·외교 정책의 기본 방향을 ‘미국 우선주의’와 ‘신고립주의’로 결정한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는 정책 수립 시 미국의 이해관계를 정책 판단의 기준으로 삼겠다는 뜻이며, 고립주의는 미국의 국익과 직접 관련 없는 사안에 대해서는 개입을 최소화하거나 우선순위를 낮추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원칙의 무게나 전략적 쓰임새, 활용 방식 등은 사뭇 다를 것으로 보인다. 미국 우선주의가 정책 결정 시 말 그대로 미국의 국익을 다른 어느 요소보다 우선적으로 고려하겠다는 적극적인 원칙이라면, 신고립주의는 미국의 국익과 직접 관련 없는 사안에 대해 개입하지 않을 명분을 마련하기 위한 소극적인 원칙에 가깝다.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군사적, 외교적 수단을 적극적으로 동원하겠다는 것이 전자의 원칙이라면, 미국의 이익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힘의 낭비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이 후자의 원칙이다.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 시도는 전자에, 해외 주둔 미군기지 축소 계획은 후자에 해당한다.

활용 방식 면에서도 차이가 클 전망이다. 미국 우선주의 원칙이 미국이 이익을 위해 다양한 보호무역 조치와 외교적 수단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의미라면, 신고립주의 선언은 본래 의미와 달리 미군의 해외 파병이나 주둔 비용 분담을 압박하기 위한 숨겨진 카드에 가깝다. 상대국의 대응 방식과 해당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판단 등이 어우러져 미국의 영향력이 실질적으로 줄어드는 곳, 미국의 영향력은 유지하되 관련 비용을 수혜국에 전가하는 곳 등으로 다양하게 재편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두 가지 원칙의 의미나 쓰임새가 다른 만큼 우리의 대응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특히 무역이나 투자 관련 분야에서는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통상 당국의 공세적인 정책 개입이 예상되는 만큼 우리 정부 역시 선제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반덤핑 판정이나 비관세 장벽 적용 과정에서 ‘공정가치’ 등을 내세워 자의적인 기준을 강요한다거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합의된 사항들에 대해서도 재검토를 요청할 수 있는 만큼 사전 대비가 필요하다.

또한 신고립주의 원칙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하는 군사나 외교 분야의 경우 명시적으로 정해진 협상 방식이 존재하지 않는 만큼 대응이 훨씬 어려울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도 미국의 군사적, 외교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부딪치는 곳인 만큼 우리 역시 미국의 명분은 최대한 살려 주면서 실익을 지킬 수 있는 외교적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2016-12-3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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