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상대평가와 줄 세우기에 물든 대학/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입력 : ㅣ 수정 : 2016-12-21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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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학기 말이다. 여느 때처럼 교수들은 학점 문제로 곤혹스러울 것이다. 누구까지 A이고, 누구부터 C를 줘야 할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기 말 학점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대부분은 어떤 학점을 받을지에 촉각을 세운다. 무엇을 배웠느냐보다는 성적표에 표기된 학점이 중요하다. 두 번째 부류는 학점을 받은 후에 내가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교수에게 진지하게 묻는 경우다. 중요한 질문임에도 대답이 궁색해질 때가 있다. 학생별로 성취 수준을 평가하고 그에 따라 적절한 학점을 부여했다기보다는 성적순으로 학생들을 줄 세우고 대학이 제시한 구간에 따라 학점을 ‘강제 배분’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평가는 상대평가와 절대평가가 있다. 상대평가는 개개 학생의 점수와 순위가 동료 학생의 점수에 의해 상대적으로 결정되는 방식이다. 반면 절대평가는 학생의 학업 성취 수준을 어떠한 절대적 기준에 따라 평가하는 방법이다.?여기서 기준은 교육 목표와 관련된다. 즉 교육 목표에 얼마나 도달했는지가 학점의 잣대가 된다.?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상대평가다. 대표적인 것이 고교 내신과 수능 등급이다. 많은 지원자 중에서 소수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는 점에서 상대평가가 불가피한 면이 있다. 문제는 대학에 와서도 상대평가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기에는 상대평가가 가진 비교육적 요소가 많다.?우선 상대평가는 경쟁과 선발을 전제로 한다. 내 친구와 ‘함께’ A를 받을 수 없는 시스템이 상대평가다. 조금이라도 앞선 학생을 선발하고 우대하는 것이 상대평가다. 이러한 평가 체제에서 학생들은 서로 견제하고 협력보다는 경쟁을 배운다. 지식을 함께 나누고 키우기보다는 동료보다 앞서려고 노력한다. 필자의 연구팀이 한국과 미국 대학생의 협동적 학습 태도를 비교한 결과 1학년 때에는 한국 학생들이 미국 학생들보다 높았지만 4학년이 되면서 역전됐다. 이런 캠퍼스 환경에서는 공동체 의식과 신뢰 자본의 형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공유와 협력의 문화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처럼 상대평가가 대학 사회에 만연한 이유는 왜일까. 우선 평가의 목적을 학업 성취의 확인보다는 선별(選別)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것이 미리 학생들을 등급 지어 노동시장으로 내보내라는 기업의 요구를 대학이 받아들인 결과라고도 말한다. 정부가 실시하는 각종 대학평가에서 ‘학사 관리의 엄정성’이라는 것이 핵심 지표로 등장하면서 상대평가가 확산됐다는 진단도 있다. 애초 학사 관리 이슈가 부각된 이유는 일부 대학의 학점 부풀리기와 온정주의 폐단을 바로잡으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책 의도와 달리 대학 사회에서는 학사 관리의 엄정성을 단순하게 상대평가를 도입하라는 것으로 해석한다.

절대평가의 도입이 쉽지 않은 것도 상대평가의 확산에 기여한다. 교육적으로 타당하고 바람직함에도 절대평가를 실시하려면 많은 수고로움과 비용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과목별로 교육 목표와 성취 수준이 명확히 제시돼야 하고, 학생이 여기에 도달했는지를 객관적으로 진단하는 기준과 투명한 평가 절차가 필요하다. 많은 학생을 대상으로 정확한 평가가 이루어지려면 교수를 돕는 교육 조교도 필요하다. 교육 현장에서는 평가의 내용과 방식이 교수와 학습의 과정을 실질적으로 지배한다. 즉 평가하는 방식대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학습하는 태도가 형성된다. 협력보다 경쟁을 배우고, 무엇을 배웠는지보다 최종 학점에 매달리게 하는 비교육적 상대평가를 언제까지 유지할 것인가.

이제 대학 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평가 혁명에 나서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창의융합 인재는 공유와 협력을 자양분으로 자란다. 우리 사회에서 서서히 사라져 가는 공동체 의식과 신뢰의 자산을 회복하려면, 인재를 키우는 대학 캠퍼스부터 상생과 협력의 공간으로 바꿔야 한다. 나와 너의 생각을 합치면 새로운 지식과 창의적인 산물이 나온다는 것을 경험하는 곳이어야 한다. 학생을 한 줄로 세우고 상대적인 위치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것에서 벗어나 학생 저마다 잠재 역량을 최대한 펼치고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면서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도록 돕는 것이 대학의 진정한 역할이다.
2016-12-2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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