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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중심’ 역사 ‘변화무쌍’ 역사

‘사람 중심’ 역사 ‘변화무쌍’ 역사

안동환 기자
안동환 기자
입력 2016-12-07 17:28
업데이트 2016-12-07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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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도토스 ‘역사’ 그리스어 첫 완역한 김봉철 아주대 교수

최초 역사가 헤로도토스 가감 없이 들은 대로 기록
인간 행적 탐구해 기억될 유산으로 만든 첫 공로자
국내 전공 학자 첫 번역… 7년간 원고 4300장 작업
‘인간 운명은 변한다’는 사유 그대로 전달하려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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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사 전공 학자로 헤로도토스의 ‘역사’(히스토리아이)를 7년 만에 완역해 펴낸 김봉철 아주대 사학과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사 전공 학자로 헤로도토스의 ‘역사’(히스토리아이)를 7년 만에 완역해 펴낸 김봉철 아주대 사학과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쓰러진 바로 그 자리에 묻혔다.”

인류사 최초의 역사가인 그리스인 헤로도토스(BC 484년 추정~BC 425년 추정)는 저서 ‘역사’(희랍어 제목은 ‘히스토리아이’)에서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의 300만 대군과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전투를 벌이다 전사한 스파르타 용사 300명의 최후를 이렇게 기록했다. 헤로도토스는 크세르크세스가 전투를 바라보다 왕좌에서 세 번이나 벌떡 일어났다는 생생한 묘사를 더한다. 그의 ‘역사’는 시공을 초월해 영화 ‘300’(2006)의 원작이 됐다.

국내에 번역된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지금까지 두 권뿐이었다. 여기에 고대 그리스사 전공 학자인 김봉철(59) 아주대 사학과 교수가 한 권을 더했다. 국내에서는 전공 학자가 그리스어 원전을 번역한 첫 책으로 기록된다. 중세 시대 그리스어 필사본을 복원한 가장 대표적 판본인 독일 슈타인 텍스트를 원전으로 했다. 2009년 초벌 번역을 시작한 후 방대한 역주 작업을 거쳐 출간까지 꼬박 7년이 걸렸다. 200자 원고지로 4300장 분량이다.

김 교수는 7일 “헤로도토스의 서술이 갖는 ‘역사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가급적 의역을 하지 않았다”며 “그의 문장과 자구 하나하나를 독자에게 충실하게 전달하겠다는 게 번역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고대 그리스사 전공자는 희소하다. 이는 그동안 전공자들이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번역할 인적·물적 토대가 부족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헤로도토스의 인간사에 대한 사유는 현대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설명한다. 역사를 인간의 기록으로 만들려고 했던 헤로도토스의 꿈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그는 저서 곳곳에서 ‘인간의 운명은 확정적이거나 불변의 것이 아니며 변화무쌍하다’고 강조한다”고 말한다.

이 같은 ‘인간 중심’의 시각은 헤로도토스가 처음으로 신(神)이나 반신(半神)적 영웅의 신화적 이야기를 다루지 않고, 인간들의 실제 사건을 기록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는 기원전 558년부터 기원전 479년까지 약 80년의 기록. 그는 동서양 문명의 ‘최초의 충돌’인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을 다뤘다. 인류의 역사라는 학문의 원형을 헤로도토스에게서 찾을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헤로도토스가 ‘역사’를 저술한 목적에 대해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의 일이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을 막고 이것이 널리 알려지기를 원했다”며 “헤로도토스는 과거 인간들의 위대한 행적을 탐구하고 밝혀내 기억될 유산으로 만든 최초의 공로자”라고 말한다.

헤로도토스 역시 특정 구전 내용에 대해서는 허황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가감 없이 들은 대로’ 기록한다. 네우리스인들이 일 년에 한 번 며칠 동안 이리로 변한다거나 외눈박이 인간들의 존재, 염소 발을 가진 인간들이 6달 동안 잠만 잔다는 얘기 등의 기록에는 “나는 그들의 이런 말을 믿지 않지만”, “나는 이들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등 자료의 신빙성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확실히 밝힌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후세 역사가인 투키디데스나 키케로가 헤로도토스의 역사 서술의 신뢰성을 비판하는 논점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가 들은 대로 기록한 내용들이 종교와 신화, 풍습, 지리, 동식물 등 미지의 고대 세계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의 보물 창고가 됐다”고 말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2016-12-08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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