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최순실과 억지인식지수/민만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입력 : ㅣ 수정 : 2016-11-01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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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만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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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만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아줌마 한 사람이 대통령 뒤에 숨어 국정을 주물렀다니 참으로 해괴한 일이다. 온 국민이 분노와 함께 참담한 심경을 표출하고 있다.

매일 자고 일어나면 최순실의 행적과 대통령과의 이상한 관계에 대한 보도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지만 그 모두가 사실일까 진실로 두렵다. 어쩌다 나라 꼴이 이리 됐을까. 나라 꼴이 이렇게 된 데에는 어느 한두 사람, 한두 분야에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총체적 난국의 원인으로 우리 사회에서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법 이전에 상식과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법이 건물의 철근이라면 상식과 원칙은 철근을 지지하고 보강하는 콘크리트에 해당한다. 법을 지키지 않는 경우에 제재를 가함으로써 회복을 꾀할 수 있지만 상식과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는 뾰족한 대책도 없이 서서히 무너지게 된다.

우리는 법의 지배를 말하지만 법의 지배에 앞서 우리 사회에서 ‘상식의 지배’, ‘원칙의 지배’가 구현돼야 한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에 억지와 몰상식이 판을 치고 있다. 억지의 사전적 의미는 잘 안 될 일을 무리하게 기어이 해내려는 고집으로 생떼와 비슷한 말이다. 정당한 절차와 방법을 무시하고 자기 이익이나 입장을 관철하려는 태도로서 원칙과 상식에 벗어난 말, 행동, 일처리 방식을 뜻한다.

얼마 전 서울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야당 국회의원이 모 청와대 실력자의 아들을 의경 중에서도 서울경찰청 차장 운전기사로 선발한 이유를 묻자 ‘운전을 잘해서 뽑았는데 특히 코너링이 좋았다’는 답변이 나왔다. 코웃음을 칠 일이다. 이렇듯 정치권이나 관료는 말할 필요조차 없고, 사회 전반에 온갖 억지와 변칙이 난무해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이와 같은 발언들이 감히 터져 나올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참으로 개탄스럽다. 그동안 일부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의 어거지는 도를 넘는 것이었지만, 그중에서도 백미는 이번 최순실 사건이 아닌가 한다.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처신이나 발언을 해 놓고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어거지 정치인이 다음 선거에서 또다시 당선되고, 말도 안 되는 짓을 한 공무원도 버젓이 자리를 지키고 있고, 심지어는 윗사람의 눈에 들어 오히려 승진까지 한다. 총체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억지에 대한 인식 기능, 감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우리 속담에 ‘억지가 사촌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억지를 부리다 보면 얻는 게 있다는 뜻으로 일상에서 쓰이는 듯하다. 우리 국민들이 억지 불감증에 걸려 있는 것이다.

부패인식지수(CPI)라는 것이 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매년 발표하는 국가별 부패지수로, 각국의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의 부패에 대한 인식 정도를 0부터 100까지 지수화한다. 유감이지만 우리나라는 1995년 발표가 시작된 이래 선진국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점수를 늘 받아 왔고 올해도 별 개선의 기미가 없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수치가 높을수록 청렴함을 나타내고, 낮을수록 부패가 심하다는 뜻이다. 부패인식지수가 나타내는 것은 부패의 정도가 아니라 부패에 대한 인식의 정도다. 부패에 대한 인식 정도가 높을수록 덜 부패하게 된다는 말이다. 국민이 부패에 민감할수록 그 나라 정치인, 공무원들이 더 청렴하다는 의미다.

부패인식지수와 같은 개념으로 억지인식지수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즉 사회에서 억지가 발생했을 때 일반인에 의해 인식, 용인되는 정도를 통계적 방법으로 계량화함으로써 억지인식지수를 산출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이 상식과 원칙에 어긋나는 언행과 일처리를 할 때 국민들이 이를 민감하게 인식하고 감시의 촉을 세울 때 우리 사회에서 억지는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다. 국민들이 부패에 대해 민감할수록 부패가 줄 듯이 억지에 민감할수록 억지가 사라지고 원칙과 상식이 지배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2016-11-0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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