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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날줄] 박 대통령의 ‘옷장 정치’/황수정 논설위원

[씨줄날줄] 박 대통령의 ‘옷장 정치’/황수정 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16-10-26 17:42
업데이트 2016-10-26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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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정치인의 패션 외교라면 간판격인 인물이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이다. 사람들은 항상 그의 왼쪽 가슴 높직이 달린 브로치부터 봤다. 걸프전 와중에 이라크 언론들이 ‘독사’라 공격하면 아예 독사 모양의 브로치로 반격했다. 복잡하게 엉킨 중동평화협상 테이블에서는 거미줄 브로치, 러시아와 국방 문제를 따질 때는 미사일 브로치를 달았다. 그런 덕분에 두고두고 그에게 붙어다니는 수식어가 ‘브로치 외교’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패션 정치학의 대모다. 왕실 권위를 상징하는 로열블루색 정장에 리본 블라우스, 네모난 가죽 핸드백이 트레이드 마크. ‘철의 여인’의 기품과 우아함을 대변한 오브제는 무엇보다 진주 목걸이와 브로치였고.

‘옷장 정치’의 계보는 현재진행형이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표범 무늬 힐로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그의 감각적인 구두가 지나치게 주목받는 통에 “정치력보다 패션으로 평가받는다”는 혹평을 듣기도 했다. 더러는 논란의 타깃이 된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는 올봄 식은땀을 흘렸다. 뉴욕주 경선에서 1400만원쯤 되는 명품 코트를 걸쳐 여론의 집중 포화를 받았다. 검소 패션 정치의 ‘셀렙’은 미셸 오바마 미 대통령 부인. 중저가 브랜드 제이크루를 즐겨 입어 의도치 않게 제이크루 매출액을 수직 상승시킨 주인공이다.

이 대열에서는 박근혜 대통령도 밀리지 않는다. 해외 순방국의 국기나 상징색에 맞춘 옷 입기 외교에 이만저만 공을 들이지 않았다. 인도에서는 녹색 치마와 노란색 저고리의 한복, 러시아에서는 러시아 국기의 흰색, 파란색, 빨간색 재킷을 행사마다 바꿔 입었다. 지난 5월 이란 방문 때는 찬반 논란에도 꿋꿋이 공항에서부터 내내 히잡을 썼다. 국내에서도 빨강, 노랑, 초록 등 명도 높은 정장으로 그때그때 무언의 정치 메시지를 실었다.

패션은 지극히 개인 취향의 영역이다. 하지만 최고 정치지도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박 대통령은 패션 정치에 힘을 썼지만, 많은 국민은 현실 인식이 부족한 대통령의 옷 입기에 피로감이 적잖았다. 총선 참패로 대국민 사과를 하던 즈음에도 연일 눈부신 원색 정장을 고집했고, 지난 6월 프랑스 국빈 만찬에서도 날아갈 듯한 옥색 한복 차림이었다. 대홍수로 파리 센강이 범람해 올랑드 대통령이 엘리제궁에서 대피하려던 날이었다. 차분한 의상으로 바꿔 현지 분위기에 공감해 줄 수는 없었는지, 국내 인터넷 여론은 종일 궁금해했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대통령의 의상을 책임졌다고 한다. 해외 순방길에는 일정마다 번호를 매겨 ‘원격 코디’를 했다. 강남의 의상실에서 최씨가 브로치까지 챙긴다는 소문은 진작부터 들렸다. 박 대통령의 패션에서 왜 그리 자주 공감 부재를 느꼈는지 이제 수수께끼가 풀린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2016-10-2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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