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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섶에서] 블랙박스/박홍기 논설위원

[길섶에서] 블랙박스/박홍기 논설위원

박홍기 기자
입력 2016-10-21 17:52
업데이트 2016-10-2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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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아내는 바쁘다. 딸을 지하철역까지 태워다 준다. 오늘따라 딸이 꼼지락거렸다. 네거리를 지날 때다. 반대 차선에서 버스가 터미널로 들어가려고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경적을 울리며 황급히 멈췄지만 벌써 범퍼를 스쳤다. “늦겠어”라며 재촉하던 딸이 상황을 직감한 듯 조용해졌다.

버스 기사가 내리더니 “아줌마! 그렇게 오면 어떻게 해. 깜빡이 넣었는데.” 다짜고짜 반말투로 소리를 질렀다. 속으로 ‘적반하장이 이런 거’라며 “보험회사에 사고 신고할 테니 기다리시죠. 블랙박스가 있으니 시비는 그때 하고요.” 침착하게 대꾸했다. 딸은 어쩔 수 없이 내려서 지하철역으로 달렸다.

버스 기사는 블랙박스라는 말에 태도가 확 바뀌었다. 변명하듯 몇 마디 하더니 연락처를 건넸다. 보험회사 직원이 와서 블랙박스를 확인한 결과 기사는 신호도 무시하고 깜빡이도 넣지 않았다. 사고는 기사의 과실로 끝났다. “블랙박스가 없었다면…. 영락없이 덤터기를 쓰거나 한참 승강이를 벌일 수밖에 없었을 텐데.” 블랙박스 덕을 톡톡히 봤다. 사고 처리가 끝날 즈음 딸이 전화했다. “땀날 정도로 뛰었더니 지각 안 했어.” 그리고 웃었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2016-10-2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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