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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힐러리 클린턴과 한국의 기대/전인영 서울대 명예교수(국제정치)

[시론] 힐러리 클린턴과 한국의 기대/전인영 서울대 명예교수(국제정치)

입력 2016-10-13 21:24
업데이트 2016-10-13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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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영 서울대 명예교수(국제정치)
전인영 서울대 명예교수(국제정치)
서울을 방문한 미국 밴더빌트대학 총장에게 미국 대통령 선거에 관한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는 흥미로운 지적을 했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간의 치열한 비방전을 보면서 그의 언급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완벽한 대통령 후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힐러리와 트럼프 모두 법적·도덕적 의혹을 떨쳐내지 못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두 사람에 대한 ‘비호감도’가 높은 것은 미국 유권자의 실망과 아쉬움을 반영한다. 투표장에서 누구를 결정해야 한다면 덜 나쁘고 경험이 많으며 불확실성이 적은 후보를 택해야 할 것이다.

미국 대통령 선출 과정은 길고 복잡하다. 미 대선은 막대한 선거자금, 전국적 조직망 구축, 후보의 비전과 리더십 과시, 양호한 건강상태, 충분한 정치적 경험, 여론과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능력 등을 필요로 한다. 정치적 경험이 적은 트럼프는 특유의 선동적 언사와 좌충우돌로 뉴스 미디어와 유권자의 관심을 집중시켜 왔다. 그는 지지에 소극적인 공화당 지도부와 당내 경쟁자들의 도전을 극복해 최종 주자가 됐고, 정치경험이 풍부한 민주당 클린턴 후보와 대결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민 문제, 이슬람 종교, 자유무역 비판 등 미국 중심주의, 나토와 한·일 방어, 총기규제 반대, 막말과 거짓말, 포퓰리즘, 연방소득세 문제, 여성비하 등에 관한 경박하고 무책임한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이 돼 왔다. 과거 18년 동안 연방소득세를 내지 않은 사실이 폭로되면서 트럼프의 신뢰도가 크게 낮아졌다.

치명적 타격은 제2차 토론회 직전 폭로된 여성 비하 음담패설 테이프에서 왔다. 트럼프는 잘못을 인정하고 즉시 사과했으나 대통령이 되기 위한 자격과 자질 결여라는 비난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힐러리는 트럼프 같은 인간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공격하고 있다. 당혹감을 느낀 공화당 하원의장 폴 라이언은 더이상 트럼프를 방어하지 않고 그를 위한 지지 유세도 하지 않겠으며, 의회 선거에만 전념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공화당 지도부의 우려와 트럼프 포기를 의미한다. 두 차례 토론 결과는 힐러리의 우세승으로 나타났다.

투표일까지 25일 정도가 남은 현시점의 여론조사에서는 클린턴이 6~11% 포인트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클린턴은 주요 경합 주에서도 우세를 보이고 있다. 힐러리는 총 538명(하원의원 435명, 상원의원 100명, 워싱턴DC 3명)의 선거인단 중에서 237~260명을 확보해 당선에 필요한 270명에 접근하고 있다. 설령 클린턴이 11월 8일 유권자 득표수에서 뒤진다 해도 대통령이 될 수 있게 됐다.

많은 이들은 대선 레이스 초반 크게 유리할 것 같은 힐러리가 결함투성이의 트럼프를 쉽게 제압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한다. 힐러리는 친밀감 부족과 정직성 결여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 클린턴은 국무장관 시절 주고받은 이메일 3만 3000여개를 마음대로 삭제한 일로 궁지에 몰리고 있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면 힐러리를 감옥에 보내겠다고 공언했다. 클린턴의 월가와의 친화력과 시간당 20만 달러에 이르는 초특급 강사료(?)는 비난 대상이다. 클린턴 재단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단, 빌 클린턴의 성 추문을 크게 이슈화하려던 트럼프의 계획은 차질을 빚었다. 국무장관 시절 발생한 ‘벵가지 사태’에 대한 힐러리 책임론도 제기됐으나 결정타는 되지 못했다.

트럼프가 힐러리의 뇌 혈전과 폐렴 등 건강과 스태미나 문제를 물고 늘어졌지만 클린턴의 여유 있는 반격에 막혔다.

성급한 예단은 금물이겠으나 대세는 클린턴 쪽으로 기울고 있다. 한국은 외교·국방 분야에 경험이 없고,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반복해 온 트럼프에 비해 외교 경험이 풍부하고 남북한을 잘 아는 클린턴의 당선이 바람직해 보인다. 북한과 경제사정 악화 등 다양한 국내외적 문제에 직면한 한국은 굳건한 한·미 동맹 유지를 원하고 있다.

비방전으로 얼룩진 미국 선거전을 보면서 선동적이고 자주 말을 바꾸며 시행착오를 자주 겪을 트럼프보다 우호적이며 외교와 의회 경험이 풍부한 클린턴이 당선되기를 기대해 본다.
2016-10-1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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