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이를 위해 잔고가 많은 통장 사본과 소유하고 있던 아파트 등기부 등본, 심지어 몇 군데 언론에 썼던 (내 이름과 사진이 실린) 칼럼들까지 준비했다. “인터뷰 당일에는 30분 전에 대사관 앞으로 오되 정장을 입으세요”라고 그가 얘기했을 때 나는 “넥타이도 매야 하나요”라고 물었다. 왜냐면 그 나이가 되도록 단 한번도 넥타이를 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넥타이를 매지 않으니 넥타이가 집에 있을 리 만무하다. 그는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당연히 매야죠”라고 했다. “없는데요.” “그럼 하나 사세요.” “그냥 깔끔하게만 입으면 되지 않나요”라는 나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그는 “미국 가기 싫으세요? 그거 하나 매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라며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차며 웃었다. 학교 다닐 때 ‘모여라 꿈동산’이라고 불렸던 나는 넥타이가 싫었다. 그렇잖아도 큰 머리가 더욱 커 보였으니까. 쓸모는 없어 보이는데 매고 있으면 숨이 콱 막히는 것도 영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의 조언을 무시하기도 어려웠다. 여행사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마트에 들러 넥타이를 구입했다.
설날을 이틀 앞두고 인터뷰 날짜가 결정됐다. 귀찮지만 참기로 하고 때 이른 이발을 했다. 불편했지만 참기로 하고 넥타이를 맸다. 추웠지만 참기로 하고 평소 애용하던 두툼한 파카 대신 무릎까지 내려오는 코트를 입었다. 배가 고팠지만 참기로 하고 아침 일찍 지하철을 탔다. 그리고 30분 일찍 대사관 앞에 도착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흡사 신데렐라 무도회의 입장을 기다리는 듯한 차림새의 수많은 인파였다. 맞선 장소로 유명하다는 호텔 커피숍의 풍경 같기도 했다. 무척 추웠는데도 거위털 파카는커녕 전부 늘씬해 보이는 정장이나 코트를 입고 머리에는 왁스 비슷한 걸 발랐으며 구두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렇게만 하면 모두들 ‘천조국’으로 들어가는 티켓을 얻을 수 있는 걸까.
아니, 내가 알기로는 그렇지 않다. 비자 발급 리젝트 비율이 3퍼센트 미만이면 비자 면제 국가가 되기 때문에 대사관에서는 이를 유지하느라 늘 일정 인원에 대해서는 발급을 거부한다. 즉 모두 다 같이 잘 차려 입어도 어쩔 수 없이 몇 명은 미국에 갈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 같이 조금 덜 차려 입어도 결과는 마찬가지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본인에게 필요 없는 넥타이 따위 사지 않고 실속 있는 따뜻한 옷차림에 아침도 든든히 먹는 쪽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싶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언론에서 ‘불필요한 경쟁’이니 ‘거품 경제’니 하는 기사를 볼 때마다 식전 댓바람부터 대사관 밖 담을 따라 주욱 늘어서 있던 ‘멋쟁이들의 행렬’을 떠올리곤 한다. 뭐, 덕분에 구입한 넥타이는 그럭저럭 잘 활용하고 있지만.
2016-10-13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