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미친 여자의 사랑 노래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미친 여자의 사랑 노래

입력 2016-09-28 23:08
업데이트 2016-09-29 00:19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19행에 2운을 가진 ‘비라넬’(villanelle) 시체(詩體)의 또 다른 좋은 예는 실비아 플라스(1932~1963)의 ‘미친 여자의 사랑 노래’(Mad Girl’s Love Song)이다. 어느 영문학박사가 낭송하는 “I shut my eyes and all the world drops dead”를 듣고 나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눈을 감고 세상을 떨어뜨리다니. 이렇게 강력한 이미지로 시작하는 시는 오랜만이다. 시는 첫 줄에서부터 승부를 걸어야 한다. 미친 여자의 사랑 노래라는 제목은 또 얼마나 단순하며 매력적인가.

이혜선 기자
이혜선 기자
미친 여자의 사랑 노래
-실비아 플라스

“내가 눈을 감으면 모든 세상이 죽어서 떨어지지;
눈꺼풀을 들어 올리면 모든 게 다시 태어나지.
(내 머릿속에서 널 만들어낸 것 같아.)

별들이 파랑과 빨간색으로 차려입고 왈츠를 추지,
그리고 제멋대로 어둠이 빠르게 밀려오지:
내가 눈을 감으면 모든 세상이 죽어서 떨어지지.

네가 나를 유혹해 침대로 데려가는 꿈을 꾸었지.
그리고 내게 문 스트럭을 불러주고, 미친 듯이 키스했지.
(내 머릿속에서 널 만들어낸 것 같아.)

신은 하늘에서 쓰러지고, 지옥의 불들이 사그라들고:
천사들과 악마의 남자들도 떠나지:
내가 눈을 감으면 모든 세상이 죽어서 떨어지지.

네가 말했던 대로 다시 돌아올 거라고 나는 상상했지,
하지만 나는 늙어가고 너의 이름을 잊었지.
(내 머릿속에서 널 만들어낸 것 같아.)

차라리 천둥새를 사랑했어야 했어;
천둥새는 그래도 봄이 오면 윙윙거리며 다시 돌아오기나 하지.
내가 눈을 감으면 모든 세상이 죽어서 떨어지지.
(내 머릿속에서 널 만들어낸 것 같아.)”

“I shut my eyes and all the world drops dead;
I lift my lids and all is born again.
(I think I made you up inside my head.)

The stars go waltzing out in blue and red,
And arbitrary blackness gallops in:
I shut my eyes and all the world drops dead.

I dreamed that you bewitched me into bed
And sung me moon-struck, kissed me quite insane.
(I think I made you up inside my head.)

God topples from the sky, hell’s fires fade:
Exit seraphim and Satan’s men:
I shut my eyes and all the world drops dead.

I fancied you’d return the way you said,
But I grow old and I forget your name.
(I think I made you up inside my head.)

I should have loved a thunderbird instead;
At least when spring comes they roar back again.
I shut my eyes and all the world drops dead.
(I think I made you up inside my head.)”

*

이미지 확대
최영미 시인
최영미 시인
‘미친 여자의 사랑 노래’는 대학생이던 스무살의 실비아 플라스가 뉴욕의 여성잡지 ‘마드모아젤’에 발표한 시다. (네가 아니라) 차라리 천둥새를 사랑했어야 했어. 천둥새는 (고맙게도!) 봄이 오면 윙윙거리며 다시 돌아오니까…. 미국의 명문여대인 스미스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한 여자가 이런 시를? 그녀의 그에 대한 집착이 납득되지 않는다는 독자들에게 한마디 하련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도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진 못한다. 실비아가 이십대였던 1950년대에 미국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그리 높지 않았다.

상실조차 찬란하며 탄력이 넘치는 언어에서 풋풋한 젊음이 느껴진다. 늙은 시인은 이처럼 탱글탱글한 시를 지어내지 못한다. 이 시의 형식상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정말로 미친 여자의 노래처럼 보이게 하는, 처음과 끝에 들어간 인용부호이다.

자신의 지옥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무심함, 혹은 용기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듯한데, 쟁쟁한 영국 시인 테드 휴스(1930~1998)와의 결혼으로 실비아는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영국에 온 실비아는 케임브리지의 파티에서 테드 휴스를 만났고, 서로에게 시를 보내며 친해진 둘은 석 달 만에 결혼했다. 낯선 영국 땅에서 아이 둘을 건사하느라 고군분투하는 주부는 삶의 에너지를 잃어간다. 시 ‘대디’(Daddy)에서 실비아는 자신을 억압하는 (남편을 연상시키는) 남성을 “7년 동안 내 피를 빨아먹은 뱀파이어”에 비유했다.

둘째 아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테드의 외도를 목격한 실비아는 남편과 별거에 돌입했다. 혼자 아이들을 돌보며 우울증이 도진 실비아는 추운 새벽에, 부엌의 가스오븐에 머리를 박고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 잠든 아이들이 깨어나면 먹을 우유를 옆에 놓고.

테드와 바람났던 유부녀인 아시아도 몇 년 뒤에 실비아처럼 가스를 틀어놓고, 테드와 관계해 낳은 딸과 함께 목숨을 끊었다. 테드 휴스는 훗날 영국의 국왕이 임명하는 계관시인이 되었다. 남편의 명성에 가려졌던 실비아는 죽은 뒤에 ‘비운의 천재’로 ‘원조 페미니스트 시인’으로 거듭났다. 그녀는 전설이 되었다. 안나 에릭손이 실비아에게 바친 노래 ‘Mad Girl’s Love Song’을 또 듣고 싶다. “You can call me Sylvia.” 너는 나를 실비아라고 불러도 좋아.
2016-09-29 29면

많이 본 뉴스

  • 4.10 총선
저출생 왜 점점 심해질까?
저출생 문제가 시간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습니다. ‘인구 소멸’이라는 우려까지 나옵니다. 저출생이 심화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자녀 양육 경제적 부담과 지원 부족
취업·고용 불안정 등 소득 불안
집값 등 과도한 주거 비용
출산·육아 등 여성의 경력단절
기타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