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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숨겨진 비극, 실종/지아니 볼핀 국제적십자위원회 한국사무소 대표

[기고] 숨겨진 비극, 실종/지아니 볼핀 국제적십자위원회 한국사무소 대표

입력 2016-08-29 18:14
업데이트 2016-08-29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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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니 볼핀 국제적십자위원회 한국사무소 대표
지아니 볼핀 국제적십자위원회 한국사무소 대표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을 둘러싼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간의 분쟁이 계속되고 있던 1990년대 중반, 나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나고르노 카라바흐 대표단에서 심인 사업을 맡고 있었다. 하루는 전투에 참가 중이던 한 병사의 아버지가 아들이 행방불명되었다며 대표단을 찾아왔다. 아들에 대한 정보가 들어오는 대로 그에게 연락을 주겠다고 했으나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대표단을 직접 방문해 소식을 묻곤 했다. 안타깝게도 내가 그 지역에서 근무하는 동안에는 아들의 행방이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들의 시신이라도 꼭 찾고 싶다고 말하던 그의 애절한 눈빛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동안 전 세계적으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분쟁과 폭력사태 속에서 실종됐고 오늘날에도 시리아, 남수단, 부룬디,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실종은 계속 일어나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ICRC에 접수된 실종자 추적 요청은 무려 1만 7000건에 달하며 2015년 말 현재 해결 중인 건은 6만 개가 넘는다. 국제인도법에 의하면 무력 분쟁 상황에서 사람이 실종되었을 경우, 분쟁 당사자들은 실종된 자의 행방을 수소문해 가족들에게 정보를 신속히 제공할 의무가 있다.

또한, 사망자의 시신은 존엄과 예우를 갖춰 수습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법과 규범에 대한 존중은 분쟁 현장에서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국제사회는 이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8월 30일을 ‘국제 실종자의 날’로 제정했다.

전쟁 중에는 민간인과 전투원 모두 실종될 수 있다. 전장에서는 병사들의 시체가 유기되어 대충 묻히거나 훼손되고, 상대편에 의해 억류된 자들의 생사가 그들의 가족에게 알려지지 않거나 고의로 비밀에 부쳐지기도 한다.

또한, 인구 밀집 지역에 가해지는 포격은 엄청난 수의 사상자를 양산하며 많은 사망자들이 포격의 잔해 속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실종은 납치, 즉결 처형, 그리고 대학살로 인해 발생한다.

실종된 사람들의 곤경과 그 가족들의 고통은 외면받기 쉽다. 실종자 추적은 매우 복잡한 과정으로 관련 당국 및 단체들 간의 협력은 물론 장기간에 걸친 헌신적 노력이 필요하다. ICRC는 세계 곳곳에서 가족들의 요청하에 실종된 사람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난민 캠프, 구금 시설, 병원, 시체 안치소, 공동묘지 등을 수색한다. 이때 생존자와 사망자의 신원 확인을 돕기 위해 자체 법의학 자문 팀이 현장으로 파견되기도 한다. 구금시설의 경우 억류자들에 대한 접근은 결코 쉽지 않다. 따라서 접근이 가능한 ICRC가 이들에겐 가족에게 소식을 알릴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될 때도 있다.

분쟁으로 인한 실종자들을 기리는 이날, 우리는 가족의 실종으로 비탄에 젖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어떤 심정일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고통을 줄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전쟁 중 실종이 일어나는 것을 완전히 방지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국제법하에 존재하는 법규가 제대로 적용된다면 제한할 수는 있을 것이다.
2016-08-3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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