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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기업의 농업 진출, 막아야만 하나/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열린세상] 기업의 농업 진출, 막아야만 하나/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입력 2016-08-19 23:06
업데이트 2016-08-20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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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두 달 전 미국 중북부 노스다코타주에서는 흥미로운 주민 투표가 있었다. 기업의 농업 진출을 허용할 것인지를 묻는 투표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주민 75.6%가 반대했다. 한국의 1.8배쯤 되는 면적에 주민 76만명이 거주하는 주다. 농업, 광업, 에너지 자원 등이 주된 소득원이다. 특히 주 면적의 90%가 농업 지대로 미국 최대 밀 생산지이고 그 밖에 보리, 호밀, 귀리, 옥수수, 콩 등 다양한 곡물의 주산지다.

노스다코타 농정 당국의 오랜 고민 가운데 하나가 곡물 주산지로서 가진 경제적 가치를 충분히 실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부가가치가 낮은 곡물 생산·판매에 머무는 현실이 고민이다. 일반적으로 곡물 주산지는 사료·축산업을 병행 개발해 부가가치를 높인다. 그런데 노스다코타는 과거 50년 동안 낙농, 양돈 등 주요 축산업이 3분의1 수준으로 축소됐다. 다른 곡물 주산지에서 축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농정 당국은 노스다코타가 1932년에 도입한 기업농금지법이 원인이라고 봤다. 이 법 때문에 축산 투자가 막히고 규모 경제를 실현하지 못해 다른 주와의 경쟁에서 밀렸다고 판단했다.

현재 미국은 노스다코타를 포함해 9개 주에서 기업농금지법을 시행한다. 모두 가족농을 보호함으로써 농업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전통문화와 환경을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기업의 농업 진출 금지라는 기본 원칙은 동일하지만 강도에는 주별로 차이가 있다. 일부 예외를 인정해 제한적 형태의 회사법인 영농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노스다코타는 어떤 예외도 없이 가장 강한 규제법이 있다. 이 법이 반자본주의적이며 반헌법적이라는 비판도 끊임없다. 이런 상황에서 노스다코타 농정 당국의 제안으로 주 의회는 지난해 3월 낙농과 양돈의 경우 640에이커(약 260㏊)까지는 기업 참여를 허용하는 1932년 기업농금지법의 완화 입법을 단행했다. 이에 노스다코타 농민연맹이 반발해 2만명 이상의 서명을 확보하며 주민 투표로 몰고 갔다. 완화 입법 찬성 측은 조직화하지 못해 투표운동은 전혀 없었다. 농민연맹 주축의 반대 측만 맹렬히 운동을 펼친 다소 생경한 투표를 통해 완화 입법을 거부했다. 84년이 된 기업농금지법은 한 획도 수정 없이 그대로 가게 됐다. 완화 입법 찬성 측은 뒤늦게 1932년 기업농금지법의 위헌성을 주장하며 헌법소원으로 대응한다. 이제 노스다코타의 기업농 공방은 법정으로 장소를 옮겼다.

기업농 공방은 남의 일이 아니다. 대기업의 농업 참여를 두고 한국에서도 공방이 뜨겁다. 4년 전 동부그룹의 토마토 농장 투자 포기를 이끈 일부 농민단체가 최근 LG그룹의 새만금 스마트팜 투자에도 거세게 반발한다. 상생의 길을 찾는 토론조차 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경지 여건을 포함한 농업 자원·환경을 고려하면 곡물보다는 원예작물이 한국 농업의 유망 품목이다. 지금까지 시설재배 확대를 통한 연중 생산 달성이라는 소위 ‘백색혁명’은 원예산업을 크게 변화시켰다. 하지만 국제 경쟁력은 아직 취약하다. 확고한 경쟁력을 갖춘 고부가가치 수출산업이 되려면 새로운 기술혁명을 거쳐야 한다. 스마트팜이 그 가능성을 예고한다.

백색혁명 달성에는 정부 주도의 공공 연구개발의 기여가 컸다. 그러나 정보통신기술과 광범위한 첨단 융복합 기술을 접목하는 스마트팜 개발·보급에는 정부보다 기업이 더 적합할 수 있다. 향후 기술혁신 주기가 단축되는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는 상업 목적 기업이 훨씬 신축적이고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다. 이럴 경우 기업은 제한적 영농 참여를 통해 한국형 스마트팜 모델을 개발·개선하고 농가에 보급·확산해 기업과 농민이 상생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원예농업 부문에서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엄청난 기술 혁신, 생산 확대, 경쟁의 시대가 열린다. 이런 때에 시장에서 팔아야 할 상품을 생산하는 농업은 우선 살아남아야 한다. 첨예한 경쟁을 업으로 삼는 기업이 이런 농업 생존 전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조정자 역할을 맡아야 한다. 조정을 위해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면 갖추어야 한다. 아무런 생산적 토의도 거치지 않고 또다시 기업이 없던 일로 한다면 누구에게도 득 될 것이 없다. 이번에는 치열한 공론을 통해 어떤 결론을 얻었으면 한다.
2016-08-2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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