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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Out] 남용되는 배임죄 기업 위축시킨다/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

[In&Out] 남용되는 배임죄 기업 위축시킨다/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

입력 2016-08-09 22:54
업데이트 2016-08-09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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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한테 일을 맡겼는데 그 사람이 배신을 했다면, 윤리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는 것도 당연하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여기서 그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형사처벌까지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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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
우리 형법 제355조에서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재산상 이득을 취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 배임죄로 처벌한다. 다른 사람의 일을 맡아 처리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다. 혹시라도 일을 맡긴 사람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자신도 모르게 배임죄 요건에 해당할 수 있다. 실제 배임죄로 처벌받는 경우는 많지 않겠지만 요건의 추상성으로 볼 때 장담할 수만은 없다. 배임죄에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오명이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배임죄 규정이 기업경영에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경영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는 ‘경영자’이고 본인은 ‘회사’이다. 개인 간 배임죄 성립 여부를 판단하는 것도 어렵지만 경영자와 회사와의 관계에서는 더욱 어렵다. ‘회사’도 법적으로는 사람, 즉 법인이지만 실제로는 주주, 채권자, 근로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인들로 구성된 조직이기 때문이다. 경영판단으로 주주는 이득을 봤지만 다른 이해관계인들이 손해를 본 경우, 주주는 손해를 봤는데 채권자가 이득을 본 경우, 단기성향의 주주들에게는 손해지만 장기성향의 주주들에게는 이득이 되는 경우 경영자가 ‘회사’에 대한 임무를 위배해 ‘회사’에 손해를 가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국 경영 판단에 대해 배임죄를 적용할 때는 회사의 가치평가 또는 회사의 본질에 관한 경제학적 논쟁까지 고려해야만 한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회사에 현실적 손해를 발생시킨 명백한 경우가 아니라면 경영판단에 배임죄를 적용하는 것은 신중해야만 한다. 신중해야만 하는 이유는 또 있다. 법관의 사후확신편향성 때문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마치 처음부터 그러한 결과가 발생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생각해 버리는 인간의 보편적 편향성을 뜻한다. 경영판단은 결과를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상태에서 사전적으로 내려진다. 반면 배임죄 해당 여부에 대한 법적 판단은 실패한 결과를 두고 사후적으로 내려진다. 법관들은 그것이 경영자의 잘못된 경영판단에서 초래된 것으로 보아 책임을 물으려는 편향에 빠지기 쉽다.

이렇게 회사가치 평가의 어려움과 인간의 보편적 편향성 때문에 경영판단에 대한 배임죄 적용은 신중하고 자제되어야 한다. 합리적인 경영판단이라면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결과를 초래했더라도 법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경영판단의 원칙이 해외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최근 유럽연합(EU)이 발표한 유럽모범회사법에도 명문화되어 있다. 배임죄를 규정하고 있는 나라는 흔치 않으므로 대부분 나라들에서는 경영판단의 원칙을 적용해 경영자에게 민사적 책임을 묻는 것을 자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경영판단의 원칙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민사적 책임을 넘어 형사책임까지 묻고 있다. 개선이 필요하다. 지나치게 추상적인 현행 형법상 배임죄 규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상법에 경영판단의 원칙을 명문으로 규정해 경영자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때 적용해야 한다.
2016-08-1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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