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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소고기 폭식’ 무역 판도 바꿨다

‘중국인 소고기 폭식’ 무역 판도 바꿨다

김성호 기자
입력 2016-08-05 18:20
업데이트 2016-08-0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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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 자본주의/이노우에 교스케 지음/박재현 옮김/엑스오북/272쪽/1만 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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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월스트리트 뉴욕증권거래소 인근에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라는 슬로건을 건 시위대가 기업의 탐욕과 사회적 불평등을 규탄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종전의 투자시스템이 붕괴되면서 월스트리트에는 돈이 코모디티(상품)로 흘러들어 비정상적 상황이 가속화하고 있다. 서울신문 DB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 뉴욕증권거래소 인근에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라는 슬로건을 건 시위대가 기업의 탐욕과 사회적 불평등을 규탄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종전의 투자시스템이 붕괴되면서 월스트리트에는 돈이 코모디티(상품)로 흘러들어 비정상적 상황이 가속화하고 있다.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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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웰링턴 인근의 목장 모습. 중국의 소고기 폭식으로 뉴질랜드에선 양보다 소를 사육하는 농장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 서울신문 DB
뉴질랜드 웰링턴 인근의 목장 모습. 중국의 소고기 폭식으로 뉴질랜드에선 양보다 소를 사육하는 농장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 서울신문 DB
생 아닌 이익수단 된 먹거리 통해
동물·자연에 대한 인간의 착취 고발
美월가 ‘머니자본주의’ 폐해 되새겨
공존 가능한 사회시스템 구축 역설


이제 먹거리는 생존을 위한 섭생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그보다는 이익 창출을 위한 투자 거래의 유용한 수단이란 속성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일본 NHK방송의 시사보도 PD가 쓴 이 책은 바로 소고기를 중심으로 가속화하는 ‘먹거리의 자본화’를 파고들어 흥미롭다.

그 천착의 출발점은 일본에서 음식값이 폭등하기 시작한 소고기 덮밥이다. 저자 자신도 2주에 한 번꼴로 끼니를 때운다는 소고기 덮밥 가격의 인상에 의문을 품고 전 세계를 다니며 실상을 건져낸 보고서로 읽힌다. 우선 그 소고기값의 폭등 원인이 중국에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전통적인 중국의 식육은 돼지나 닭이었다. 왜 바뀐 것일까.

우선 글로벌 중산층 문화의 중국 유입이 큰 원인이다. 경제수준이 향상되면서 돼지나 닭 대신 소고기 섭취로 옮겨간 것이다. 미국 농무부 통계를 보면 2000년 이후 그 추세가 또렷하다. 일본의 소비량이 10년 이상 평행선을 유지한 반면 중국의 소비량은 꾸준히 증가해 2014년에는 유럽연합(EU) 전체 소비량과 비슷하게 됐다. 소고기 수입량을 보면 그 추이는 더욱 도드라진다. 2014년까지 5년간 6배나 증가했고 2013년 무렵엔 일본을 앞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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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소고기 폭식에는 중산층 문화 유입 말고도 또 다른 이유가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전통적으로 EU에 기계제품을 팔아 먹고살던 무역상들이 소고기 수입에 눈독을 들이면서 수요가 폭증한 것이다. “소고기가 뛰면 양고기도 뛴다.” 저자의 이 표현대로 중국의 소고기 폭식 후유증은 곳곳으로 뻗친다. ‘사람보다 양이 더 많이 산다’던 뉴질랜드의 낙농업자들이 양 아닌 소를 사육하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양 사육을 앞지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뉴질랜드에서 중국으로 향하는 유제품과 소고기 수출액은 최근 1년 새 80%나 증가했다. 브라질의 광활한 세라두초원은 빠른 속도로 사료용 콩, 옥수수 밭으로 바뀌고 있다. 베트남에는 중국의 거대 식육 가공업체가 진출했다.

전 세계를 훑어 건져낸 실상의 편린들은 역시 갈수록 심해지는 동물과 자연에 대한 인간의 착취로 모아진다. 그 과정에서 짚어내는 소비자본주의의 거대화가 일반 독자도 쉽게 이해할 수준의 현장 이야기와 사람들 모습을 통해 속속들이 고발된다.

월스트리트의 흐름도 빼놓지 않았다. 월스트리트는 잘 알려졌듯이 누구보다 앞서 엄청난 자금을 흡수해 이율을 높이는 새 금융상품을 개발해 내는 연금술사들의 경연장이다.

저자는 생필품 ‘인덱스 펀드’가 세계금융의 중심지인 뉴욕 월가에서 개발된 점에 주목한다. 월가가 생필품 인덱스 펀드를 개발한 것은 금융 쇼크 이전이지만 그것으로 돈을 벌 수 있다며 투자에 열을 올린 것은 금융 쇼크 이후이다. 인덱스 펀드가 선물시장으로 유입되면서 밀의 시장가격은 37%나 급등했다. 금융 쇼크 이후 주식, 채권, 금융파생상품의 투자시스템이 붕괴되면서 돈의 거친 물결이 코모디티(상품)로 흘러들어 비정상의 상황을 부른 것이다.

돈이 돈을 낳는 머니자본주의의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의 몫으로 돌려지기 마련이다. 뉴욕 맨해튼 뒷골목엔 중산층으로 풍요를 누리던 노숙자들이 무료 급식소를 찾아들고 있다. “언젠가는 소고기 덮밥을 먹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저자는 책 말미에 2014년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발언을 전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벌어진 경제 격차의 확대는 미국의 가치관을 흔들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이렇게 매듭짓는다. “성장, 수익 일변도의 트랙에서 벗어나 우리가 현재 발붙이고 사는 그 땅에서 자연친화적인 생산환경을 만들고 공존 가능한 사회시스템을 구축할 때 희망이 보인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2016-08-0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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