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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죽음이여 뽐내지 마라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죽음이여 뽐내지 마라

입력 2016-08-03 23:40
업데이트 2016-08-04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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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죽음은 영원한 시의 주제이다. 이 세상에서 절실하게 말할 가치가 있는 건 사랑과 죽음뿐이다. 돈? 권력? 이 세상의 어떤 돈과 권력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지극한 정성은 가끔 기적을 만들어 ‘죽을’ 사람도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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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
최영미 시인
죽음은 사랑보다 어렵다. 죽음이란 (개념은) 구체적으로든 은유적으로든 표현하기 어렵다. 사는 동안 우리는 사랑은 여러 차례 경험하지만 죽음은 한 번뿐이고, 이미 죽은 뒤에는 죽음을 말할 수 없기에. 사랑하는 남녀는 눈에 잘 띄지만 죽음을 앞둔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지난 몇 년 동안 종합병원을 내 집처럼 드나들고, 요양병원에 누워 있는 살아 있는 시체들을 수두룩 목격했지만 ‘죽음’에 대한 시를 나는 한 편밖에 쓰지 못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직면하는, 가장 근원적이며 보편적인 문제가 죽음 아닐까. 죽음을 앞두고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잔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존 던처럼 죽음에 대해 깊이 사색하고 도발적인 언어로 죽음과 정면대결한 시인을 나는 보지 못했다. 1621년 세인트 폴 대성당의 수석사제가 되고 얼마 지나 그는 병으로 쓰러졌다. 거의 목숨이 위태로울 만큼 심하게 앓다가 그는 일어났다. 회복기에 쓴 기도문 중 하나는 ‘어떤 사람도 섬이 아니다’(No man is an island)로 시작하는데, 훗날 헤밍웨이의 소설 제목에 쓰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구절로 유명하다.

강미란 기자
강미란 기자
“…어떤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위해 종이 울리는지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마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해 울리느니.(any man’s death diminishes me, because I am involved in mankind, and 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

새 국왕 찰스 1세 앞에서 설교하는 영광을 누리고 1631년 존 던은 이 세상과 작별했다. 그의 사후에 그의 설교문과 시집들이 발간되었다. 14줄로 된 ‘죽음이여 뽐내지 마라’(Death be not proud)는 첫 행부터 우리를 사로잡는다.

죽음이여 뽐내지 마라

- 존 던

죽음이여 뽐내지 마라, 어떤 사람들은 그대를

강하고 무섭다 말하지만, 그대는 그렇게 강하고 무섭지 않아.

그대가 쓰러뜨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죽지 않았고

가련한 죽음이여, 그대는 나도 죽이지 못해.

그대의 그림들에 불과한 휴식과 잠에서

많은 기쁨이 흘러나온다면,

그대에게선 더 많은 기쁨이 흘러나오리라.

그리고 우리 중에 가장 훌륭한 이들이 가장 먼저 그대를 따라가지만,

이는 그들 육체의 안식이며, 영혼의 구원이니.

그대는 운명과 재난사고와 군주들과 절망한 자들의 노예,

그리고 독약과 전쟁과 질병도 그대와 함께 살지.

아편이나 마술도 우리를 잠들게 할 수 있으니,

그대의 습격보다 훨씬 좋지, 그런데 그대는 왜 그리 거만한가?

짧게 한잠 자고 나면, 우리는 영원히 깨어,

더이상 죽음은 없으리; 죽음, 그대가 죽으리라.

Death be not proud, though some have called thee

Mighty and dreadful, for, thou art not so,

For those whom thou think’st, thou dost overthrow,

Die not, poor death, nor yet canst thou kill me.

From rest and sleep, which but thy pictures be,

Much pleasure, then from thee, much more must flow,

And soonest our best men with thee do go,

Rest of their bones, and soul’s delivery.

Thou art slave to fate, chance, kings, and desperate men,

And dost with poison, war, and sickness dwell,

And poppy, or charms can make us sleep well

And better than thy stroke; why swell’st thou then?

One short sleep past, we wake eternally

And death shall be no more;Death, thou shalt die.

*(역자 주) ‘thee’는 현대영어에서 2인칭 목적격 you, ‘thou’는 2인칭 주격 you이다. ‘shalt’(=shall), ‘art’(=are), ‘dost’는 동사 do의 2인칭 단수 직설법 현재형이다. ‘canst’는 can의 2인칭 단수 현재형이다. 즉 “canst thou = can you”이니 참고하시길.

죽음을 이기려는 안간힘에 존 던 특유의 위트가 살아 반짝인다. 육신의 휴식과 잠을 (눈에 보이지 않는) 죽음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그림’(pictures)으로 보고, 잠이 달콤하고 즐거운 거라면 잠의 원형인 죽음에게선 더 많은 쾌락이 흘러나올 거라니. 시에서나 가능한 비약이다. ‘죽음’을 일종의 이데아로 보고, 그 구체적인 현상인 잠을 대립시키는 논리전개에서 플라톤의 영향이 감지된다.

죽음에게 사형을 선고한 마지막 행이 압권이다. 과학으로는 불가능한 초월을 감히 시도한 시인. 그 누구도 이기지 못한 죽음을 (시로) 이겼으니 대단하지 않은가. 언젠가 존 던의 유해가 묻힌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에 가서, 나도 ‘죽음’을 유쾌하게 음미하고 싶다.
2016-08-04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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