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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리니언시에 대한 오해와 진실/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

[기고] 리니언시에 대한 오해와 진실/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

입력 2016-08-01 18:18
업데이트 2016-08-01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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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
‘자진 신고자 감면제도’(리니언시)는 담합 가담자가 담합 사실을 신고하면 시정 조치나 과징금 등 제재를 감면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누가 자진 신고를 할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이 되면 적어도 상대방보다 불리한 위치에 처하지 않기 위해 차선책으로 자진 신고를 하게 되는 ‘죄수의 딜레마’ 이론을 이용한 제도다. 1순위는 완전 면제, 2순위는 일부 면제, 3순위부터는 감면 혜택을 부여하지 않아 빨리 신고할수록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

최근 담합이 은밀하고 지능적으로 이뤄져 담합 가담자의 자진 신고가 없으면 적발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이유에서 강제조사권에 감청 권한까지 가진 미국 법무부도 담합 사건의 90% 이상을 리니언시로 적발하고 있다. 리니언시는 담합 가담자가 스스로 담합의 전모를 밝히므로 가장 효과적인 적발 수단이라는 것이 전 세계 경쟁 당국의 공통된 인식이다. 그 결과 리니언시는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40개 이상 국가에서 운영하는 일종의 ‘글로벌 스탠더드’가 됐다.

리니언시는 담합 구조를 약화시킬 뿐 아니라 담합 가담자 스스로 담합을 붕괴시킴으로써 재발이 어렵도록 하는 데에도 큰 효과가 있다. 일각에서는 “자진 신고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담합 가담자에 대한 제재를 감면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하지만 자진 신고자에 대한 감면 혜택은 담합 적발과 소비자 피해 차단을 위해 지불하는 불가피한 비용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리니언시를 통해 과징금이 얼마나 감면됐는지보다는 얼마나 많은 담합이 적발되고 소비자 피해가 차단됐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리니언시가 폐지되면 오히려 기업들은 배신의 위험에서 벗어나 안정적으로 담합을 형성·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특히 경쟁 당국이 직접 현장조사를 하기 어려운 국제 카르텔은 적발이 불가능해져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 문제가 발생할 우려도 있다.

실제로 공정위는 리니언시를 통해 담합 적발률을 획기적으로 제고한 바 있다. 2005년 이전에는 감면 신청이 연평균 1건에 불과했고 시정명령 이상의 제재 건수도 연평균 12건에 그쳤다. 그러나 2005년 과징금 감면율을 정률로 변경해 공정위 재량을 없애는 등 리니언시 제도의 예측 가능성을 높인 이후로는 감면 신청이 급증하면서 연평균 제재 건수도 42건으로 늘었다.

리니언시는 양날의 검(劍)과 같다. 리니언시를 통해 담합을 효과적으로 적발·와해시킬 수 있는 동시에 담합 가담자에게 과도한 감면 혜택이 부여될 위험도 존재한다. 따라서 공정위는 법령상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충족한 경우에 한해 2순위까지만 감면 혜택을 주고 있다. 이미 공정위가 충분한 증거를 확보한 때, 상습적으로 담합하거나 다른 사업자에게 담합을 강요한 때, 1순위 신고일로부터 2년을 초과해 늑장 신고했을 때에는 감면 혜택을 배제하고 있다. 향후에도 공정위는 엄격하고 공정한 제도 운영을 통해 리니언시의 효용을 극대화함으로써 담합 적발과 소비자 피해 차단을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다.
2016-08-02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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