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황교안 총리의 6시간 ‘버스 간담회’/최광숙 논설위원

입력 : ㅣ 수정 : 2016-07-23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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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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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숙 논설위원

물조차 마실 수가 없었다. 오지 탐험대의 무용담이 아니다. 지난 15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반발하는 경북 성주 시위 현장에서의 일이다. 미니 버스에 탔던 황교안 총리를 비롯해 한민구 국방장관 등 일행은 이날 시위대에 막혀 6시간 동안 버스에 갇혔다. 화장실을 갈 수 없으니 목이 말라도 참아야 했다.

황 총리는 좁은 버스 안에서 6시간 동안 무엇을 했을까? 버스 밖에서는 폭력 시위가 한창인데 꼼짝없이 발이 묶인 나름 ‘극한상황’이었지만 황 총리는 특유의 침착함을 잃지 않고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 성주군수, 성주군의회 의장, 주민대표 등과 차례로 버스에서 만나 ‘사드의 안전함’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고 한다. 예정된 주민설명회가 파행을 겪자 즉석 버스 간담회로 대체한 것이다.

일이 터진 후 수습에 나선 황 총리의 ‘뒷북 설득’을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가지다. 한편에선 “변변한 수습책도 없이 몸으로 때워 보려다 자초한 일”이라고 지적한다. 반면 늘 중요한 결정은 ‘윗분’이 하고 뒷설거지만 해야 하는 ‘2인자의 설움’에 연민을 느낀다는 이들도 있다. 이 연민은 최근 “총리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따가운 시선과 맞물려 옷이 찢기고 달걀 세례를 받는 봉변을 통해서야 ‘미친 존재감’을 확인시켜 준 황 총리에 대한 안타까움이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이야 ‘불통’이라고 해도 황 총리라도 진작 성주 주민들을 만나 설득에 나섰어야 했다는 질책도 담겨 있다. 더구나 총리실은 정부 정책을 둘러싼 갈등 관리를 하는 총사령탑 아닌가. 안보의 위중함을 고려하면 사드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은밀히 결정할 사안이지 총리실이 나설 일이 아니라고 항변할지는 모르겠지만, 사드 배치 문제야말로 고차원의 갈등 관리가 필요한 영역이다.

국가 안보도 중요하지만 온 국민의 관심 사안을 마치 군사작전하듯 기습적으로 해치우지 못하도록 총리가 제동을 걸었어야 했다. 총리실이 만든 160쪽에 이르는 ‘공공기관의 갈등관리 매뉴얼’은 바로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 아니겠나.

과거 갈등이 생기면 억압하는 ‘가부장적’ 관리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갈등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이해 당사자들 간의 ‘합의’를 통한 적극적 갈등 예방과 해결에 나선다. 갈등 관리도 ‘사후적 갈등 해결’에서 ‘사전적 갈등 예방’으로 바뀌었다. 정책 추진 ‘결과와 효율성’을 중시하는 대신 ‘과정과 민주성·형평성’에 방점을 둔다. 이해 당사자 간의 조정과 중재 등 ‘협상’이 가장 중요한 덕목임은 물론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에 사드 배치 결정 과정 처음부터 끝까지 이러한 갈등 관리 매뉴얼 중 어느 것 하나 지킨 것이 없다. 외려 거꾸로 행동했다. 갈등 관리 시각에서 본다면 ‘전자파 참외’, ‘암·불임 유발’ 같은 ‘사드 괴담’이 난무하는 것도 어쩌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초 류우익 대통령 비서실장 등 청와대 참모들을 물러나게 한 광우병 정국도 괴담에서 시작됐다. 말도 안 되는 ‘뇌 송송 구멍탁’ 같은 괴담이 국민 마음을 파고들었다. 사드 괴담도 마찬가지다. 괴담은 불안과 공포를 먹고사는 괴물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와 레오 프스트맨은 ‘소문의 심리학’에서 소문의 강도·유포량은 문제의 중요성과 그 논제에 관한 증거의 애매함의 곱하기에 비례한다고 주장했다. 중요함과 애매함의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라는 점이 중요하다. 중요함과 애매함 가운데 어느 한쪽이 ‘0’이면 소문은 생길 수 없다. 이를테면 사드의 전자파 논란 등도 과학적 논거로 애매함이 없어지면 괴담은 ‘0’이 된다.

사드 괴담은 일부 불순세력이 퍼뜨릴 수도 있으나 실상은 갈등 관리 실패의 산물일 수도 있다. 사드 배치에 대한 정부의 대(對)국민 설득이 선행됐다면 얼토당토않은 괴담은 발을 못 붙였을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광우병 사태와 관련해 “미국산 소고기에 대해 갖고 있는 불안감을 고려해 사전에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내용의 대국민 담화를 뒤늦게 발표하고 자신의 실책을 인정한 것도 그래서다.

이제라도 정부는 사드와 관련해 보다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야 한다. 그러면 괴담 등은 서서히 잦아들 것이다. 총리에게 맡겨진 뒷설거지도 잘하면 빛이 난다.

bori@seoul.co.kr
2016-07-2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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