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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브렉시트가 우리 농업에 준 교훈/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열린세상] 브렉시트가 우리 농업에 준 교훈/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입력 2016-07-13 22:20
업데이트 2016-07-13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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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영국 농업부문에 불확실성이 감돈다. 유럽연합(EU) 28개국 농업은 공동농업정책(CAP)으로 통합돼 있다. CAP는 EU 예산 40%를 지출하는 최대 산업정책이다. ‘이런 CAP 우산을 벗을 때 영국 단독으로 여전한 수준의 농업정책을 펼 수 있을까?’ ‘영국 수출 농식품의 61%, 금액으로 170억 유로를 무관세로 사주는 EU 시장에 계속 접근할 수 있을까?’ 등이 의문이다.

브렉시트 찬반 투표운동 때는 묻혔던 의문이다. ‘매년 80억 유로를 CAP에 내고 38억 유로만 농업부문이 받으니 탈퇴가 유리하다’ ‘EU가 요구하는 복잡한 규제를 벗을 수 있다’는 주장이 압도했다. 받는 것의 두 배가 넘으니 분담금이 커 보인다. 그러나 시장접근을 비롯한 어마어마한 유발 효과는 무시했다. 또 CAP 혜택을 받으려면 환경, 식품 안전, 동식물 위생, 동물 복지, 토양·수자원 보호 등과 관련된 복잡한 기준·규정을 지켜야 하니 당장은 농민이 불편하다. 그러나 불편이 가져올 농업·농촌의 지속성 확보와 미래가치 상승 효과는 무시했다. 브렉시트 찬성 진영은 이렇게 단순 구호로 농민의 불만에 틈탔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농무부 장관, 심지어 전국농민연맹 회장 등이 전국을 돌며 EU 잔류 지지를 호소했지만 농민들 마음은 얻지 못한 것 같다. 투표 직전 한 언론의 여론조사에서 농민 67%가 브렉시트를 원했다. 요즘 수많은 전문가가 영국 농업에 대한 부정적 전망을 쏟아낸다. 경기 위축과 재정 제약으로 영국 홀로 지금 수준의 농업정책 유지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농민들은 이제야 우려의 물음을 붙잡고 답을 원한다. 찬성을 외치던 지도자들은 답을 주는 대신 자리를 뜬다. 선동의 끝자락 모습이다.

브렉시트는 30여년 전 농업을 빌미로 이미 움텄다. 1984년 프랑스 퐁텐블로 유럽공동체(EC, EU 전신) 정상회의에서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자신의 말대로 ‘영국 돈 돌려받기’ 협상을 벌인다. 취임 이래 영국의 EC 예산 분담금이 과다하다고 줄곧 주장했다. 비회원국과의 교역에서 얻는 관세 수입과 국내 부가가치세 수입에 기초한 EC 예산 분담금 결정방식에 불만이 컸다. 수입 개방도와 부가가치세 과세표준이 다른 나라보다 높아 영국 분담금이 경제 규모에 비해 과다하다고 판단했다. 한편 당시 CAP는 EC 예산의 70%를 지출했다. 그런데 CAP 대상인 농업은 그리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이 영국보다 2~4배 정도 컸다. 결국 영국은 불리한 분담금 기준으로 많이 내고 작은 농업규모로 적게 받는다는 불만에 찼다. 대처 총리는 분담금 납입 거부를 무기로 협상에 임해 소위 ‘영국 리베이트’를 얻었다. 매년 내고 받는 금액 차이의 66%를 다음해 분담금에서 감면받는 거다. 일시적 분담금 감면 예는 있지만 영국 리베이트는 유일한 항구적 조치이다. 거기다 예산 소요 때문에 영국 감면액을 다른 회원국이 나누어 납부한다. 이것이 공동체의 갈등 씨앗이 됐다. 이렇게 브렉시트는 30여년 전 농업을 빌미로 시작됐다.

농업은 생산물 소비 증가율이 소득 증가율을 따르지 못한다. 그래서 농업 소득은 상대적으로 떨어져 선진국일수록 농업을 CAP 같은 정책으로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아울러 점점 생산에서 수요중심 농업으로 변하면서 국민 수요를 충족시켜야 한다. 국민은 안전 먹거리, 쾌적한 환경, 아름다운 경관 등을 원한다. 그래서 점점 많은 기준·규제를 도입하고 이를 지킬 때 정책 혜택을 준다. 여기에 선동이 틈탈 수 있음을 브렉시트가 보여줬다. 한국 농업도 그럴 때가 됐다. 경계해야 한다.

브렉시트 찬성자들의 단골 구호가 하나 더 있다. ‘스위스 농업이 EU 밖에서도 잘하듯이 영국 농업도 가능하다.’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스위스 농업은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기준·규제를 가졌다. 농민들은 철저히 지킨다. 지킨 만큼 받는다는 분명한 의무와 권리 의식이 있다. 월 300만원 공짜 기본소득도 거부하는 국민성이 그 배경이다. 그런 농민과 국민을 가진 스위스는 농업·농촌 보호를 국민의 책무로서 헌법에까지 규정하고 있다. 농민이 의무와 권리에 분명할 때 선동은 틈탈 수 없고 농업·농촌은 국민이 지킨다. 브렉시트가 일으킨 생각이다.
2016-07-1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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