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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섶에서] 애장품/황수정 논설위원

[길섶에서] 애장품/황수정 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16-07-11 22:52
업데이트 2016-07-12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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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지 못하는 습벽이 있다. 왜 거기다 모셨는지조차 까마득한 상자들이 창고에 여럿이다. 그것들을 볕 바른 곳으로 데려와 뚜껑을 여는 것은 언제나 용기백배할 일이다. 지난날의 무엇을 보내고 무엇은 더 붙들어야 할지. 사물의 소용과 추억의 효용을 저울질하는 작업에는 내공이 쌓이지 않는다.

큰 마음 먹고 오래된 상자를 꺼내 정리한다. 해묵은 습기에 우툴두툴해진 책갈피 사이에 어느 여름의 흔적이 또렷하다. 미처 피신하지 못해 엎어져 박제된 하루살이 한 마리. 고르지 못한 손글씨가 또박또박 눌러 적힌 쪽지 한 장, “국 데워 먹어라.” 지금은 세상에 없는 엄마의, 이십 년쯤 건너뛴 지금 이야기다. 삼복더위에 더운 국 챙겨준 여섯 글자는 새삼 박카스, 비타민이 되고.

값나가는 물건이 애장품은 아닐밖에. 무사히 건너온 지난날들에 대한 감사, 앞으로 걸어가게 스스로 다독이게 하는 자기 긍정. 문득 삶을 애착하게 응원해 주는 횡재가 어느 허름한 상자에 숨었다 튀어나올지 모른다.

낡은 일상을 긍정하게 하는 힘은 낡은 시간 속에도 있다. 먼 데서 빛나는 새것들에만 있지 않다. 생각을 고쳐먹고 오래된 상자를 다시 거둔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2016-07-1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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