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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갖고 돌아오겠다”…유언이 된 6·25 참전 서울대생의 편지

“복 갖고 돌아오겠다”…유언이 된 6·25 참전 서울대생의 편지

장은석 기자
입력 2016-06-25 14:47
업데이트 2016-06-25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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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고) 권석홍(당시 서울대 섬유공학과 3학년)씨가 가족에게 남긴 편지, 서울대 기록관 제공. 연합뉴스
故(고) 권석홍(당시 서울대 섬유공학과 3학년)씨가 가족에게 남긴 편지, 서울대 기록관 제공. 연합뉴스
“운명을 개척하여 많은 복 가지고 도라(돌아)오겠습니다. 진정한 진리 삶이 무엇인가 탐구해가지고 도라오겠습니다. 만일의 경우에는 저 세상에서 복을 빌겠습니다.”

서울대 섬유공학과 3학년에 재학중이던 故(고) 권석홍씨가 6·25 전쟁 발발후 포병 간부 후보생으로 육군종합학교 입교를 앞두고 가족에게 남긴 편지의 내용이다.

권씨는 미국 육군포병학교에 입교했다 전쟁 상황이 악화하자 귀국해 포병중위로 참전했다가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장으로 떠나면서 ‘만일의 경우에는 저 세상에서 복을 빌겠다’고 적은 것처럼 이 편지는 가족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이 됐다.

“생자필멸 회자필리라고 하는 세상에 형생하여 이십유여일년 그렇다할만 일도 못하고. 더구나 부모의 은혜는 조금도 갚지 못하고 후진약소민족의 서러움을 안고 방랑의 길, 재귀는 기약 못할 길을 떠나게 되니 이 한을 어찌하리오.”

마지막으로 남긴 이 구절에는 젊은 날을 즐기지 못하고 약소 민족으로서 동족 상잔의 비극을 치러야 하는 한이 그대로 담겨 있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이던 故(고) 김세환씨는 전쟁이 나자 결혼 5년만에 아내와 딸을 남기고 학도호국대 장교로 지원했다. 1951년 8월 강원 고성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근심마십시오. 서울도 탈환되었으니 자형도 돌아가야할텐데 어제 들은 라듸오(라디오)에 의하면 피난민 복귀는 용서치 않는다하니 당분간 가지 못할 것 같소. 저는 중부전선이어서 서울 집에도 가보지 못하겠소이다.”

1950년 9월 국군이 서울을 탈환한 이후 김씨가 부모와 아내, 딸에게 부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편지의 근심말라는 당부는 결국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됐다.

25일 서울대에 따르면 6·25 전쟁 중 국가를 위해 군에 지원한 서울대 학생들 중 현재 확인된 순국자는 총 29명이다.

서울대는 1996년 개교 60주년을 맞아 전몰자 명단을 만들고 6·25 전사자 추모 명판을 제작하는 한편 이들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교내 기록관은 권재홍씨와 김세환씨를 비롯해 전몰 동문 7명의 서신류와 학생증, 사진 등 당시 상황을 알려주는 자료를 기증받아 전시하고 있다.

당시 서울대 교수 상당수가 납북됐고, 학생들도 의용군으로 징집됐다.

서울대는 1950년 말부터 전시연합대학 형태로 학교를 운영했고, 1951년 2월 18일 부산으로 이동해 고려대, 국학대, 한국대, 국민대 등과 함께 부산전시연합대학에 편성됐다가 1953년 9월 수도로 귀환했다. 학교 시설 대부분은 폐허가 된 뒤였다.

서울대 관계자는 “해마다 6월이면 본부 교직교수들이 추모비 등을 참배한다”며 “국립대학으로서 호국정신과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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