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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리우의 毒, 평창엔 藥/조현석 체육부장

[데스크 시각] 리우의 毒, 평창엔 藥/조현석 체육부장

조현석 기자
조현석 기자
입력 2016-05-30 18:06
업데이트 2016-05-30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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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석 체육부장
조현석 체육부장
‘지구촌 축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출범 122년 만에 처음으로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다. 예전 같으면 지금쯤 축제 이야기로 한창 들떠 있을 법하지만 이번에는 좀체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세계인들의 관심을 떨어뜨릴 만한 어수선한 소식들이 전해지면서 올림픽 회의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축제를 주관하는 브라질부터가 시끄럽다. 현지에서 훈련 중인 외국 선수들이 권총 강도를 당하는 등 치안이 불안한 데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 심판 절차로 인해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대통령 탄핵의 여파로 체육부 장관까지 바뀌었다. 여기에 브라질 현지가 가을로 접어들면서 조금 수그러들긴 했지만 선천성 기형인 소두증을 유발하는 지카 바이러스에 대한 우려도 여전하다.

전 세계 체육계도 시끄럽다. 러시아 육상은 도핑 파문으로 올림픽 출전길이 막혔고, 러시아의 여자장대높이뛰기 선수인 ‘미녀새’ 옐레나 이신바예바는 러시아 육상에 대한 제재 조치를 풀어 주지 않으면 제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도핑 논란을 겪은 여자 테니스 선수 마리야 샤라포바가 자국 대표팀에 포함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올림픽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112년 만에 골프가 새롭게 정식 종목으로 추가됐지만 세계 톱 랭커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줄줄이 불참을 선언하면서 올림픽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남자 테니스 선수들도 불참 표명이 이어진다.

국내도 예외는 아니다. 수영 선수 박태환의 올림픽 출전 여부를 놓고도 시끄럽다. ‘이중처벌’을 놓고 박태환과 대한체육회가 힘겨루기를 하면서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가 중재에 나섰다. CAS가 박태환의 손을 들어 주더라도 대한체육회 규정을 바꾸는 문제를 놓고 한동안 공방이 이어질 전망이다.

리우올림픽이 이런저런 이유로 외면당하고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올림픽의 근본 정신이 많이 퇴색됐기 때문이다. ‘스포츠 마피아’로 불리는 IOC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면서 올림픽 개최지 선정 등을 놓고 각종 비리·뇌물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치솟는 광고료, 방송중계권료 등 상업화가 심화되면서 올림픽 정신을 ‘돈’과 바꿨다는 비난을 받은 지는 오래다. 올림픽을 개최했던 많은 도시들이 경기장 건설 등으로 막대한 돈을 쏟아부으며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또 올림픽 끝나고 애물단지로 전락한 경기장과 유지 관리를 위한 부작용들이 속출하고 있다.

“올림픽이 뭐길래”라는 푸념이 저절로 나올 법하다. 올림픽이 다시 지구촌 축제로 거듭나려면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점점 상업화되고 있는 올림픽에서 탈피해 근대올림픽의 창시자인 피에르 쿠베르탱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더이상 올림픽 개최가 경제 성장의 상징이 되고, 올림픽 메달의 개수가 국력의 상징처럼 돼서는 안 된다.

“올림픽의 의의는 승리가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다”라는 쿠베르탱의 말처럼 지구촌 축제로서 올림픽의 숭고한 정신과 이념을 이어 가야 한다.

리우올림픽이 끝난 뒤 1년여가 지나면 곧바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 이어진다. 평창올림픽이 122년 전 올림픽 출범 당시의 정신을 되살린다면 금메달 몇 개, 세계 몇 위라는 것보다 더 오래 세계인의 기억에 남는 대회가 되지 않을까.

hyun68@seoul.co.kr
2016-05-3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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