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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포커스] 일상화되는 저성장, 출구는 없는가/이재훈 한국산업기술대 총장·전 산업자원부 2차관

[금요 포커스] 일상화되는 저성장, 출구는 없는가/이재훈 한국산업기술대 총장·전 산업자원부 2차관

입력 2016-05-12 17:56
업데이트 2016-05-12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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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해운 등 일부 업종의 구조조정 논의를 지켜보면서 2000년대 초 산업정책국장 재직 시절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당시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에 대한 경쟁력을 재평가해 필요한 조치들을 미리 강구해야 했던 것은 아닐까. 같은 시기 한참 상승세를 타던 중국 특수에 잠시 눈이 가려져 이 업종들이 상당 기간 국제 경쟁력을 유지할 것으로 오인하는 ‘착시 현상’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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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한국산업기술대 총장·전 산업자원부 2차관
이재훈 한국산업기술대 총장·전 산업자원부 2차관
우리 경제의 저성장이 문제라고 한다. 지난달 19일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 전망치를 당초 3.0%에서 2.8%로 하향 조정했다. 언론은 국내외 경제기관 15곳의 전망치를 종합해 올해 성장률이 2% 중반대로 낮아져 ‘구조적 저성장’에 진입한 게 아니냐고 우려했다.

지난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우리 수출은 올해도 쉽게 회복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내수마저 여의치 않다. 세계 경제 여건이 좋지 않아 당장은 좀 힘들지만 마음만 먹으면 3%대 성장은 쉽게 달성할 것으로 여겨 왔는데 자꾸 요원해지는 듯하다. 어떤 대응이 필요한가에 대한 고민도 중요하지만 장차 예견되는 문제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지를 먼저 점검할 필요가 있다. 문제 인식이 불명확한 상태에서는 효과적인 정책 대응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살펴보면 문제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1985년 ‘플라자 합의’가 이뤄지자 일본 정부는 엔고에 의한 수출 부진을 우려해 금리 인하와 함께 강도 높은 경기 부양책을 실시한다. 이로 인해 시중의 과도한 유동성이 주식과 부동산으로 유입돼 버블이 형성되고 있었지만 정책 대응은 신속히 이뤄지지 못했다. 1990년대 들어 버블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부실채권이 발생하고 실물경제의 부실로 이어졌는데도 여전히 대응은 미온적이었다. 거꾸로 1990년대 중반에 경기가 잠시 회복되는 기미를 보이자 본격적인 경기 회복으로 잘못 판단하고 소비세를 인상함으로써 그나마 불씨를 살려 가던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아베 신조 일본 정부도 경기가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이르지 못한 2014년 소비세를 인상함으로써 경제 활성화에 역행했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앞서 언급한 ‘중국발(發) 착시 현상’도 되새겨 봐야 한다. 1990년 30%에 육박했던 우리의 대(對)미 수출 비중은 이후 계속 감소해 2003년을 기점으로 중국에 수출 대상국 1위 지위를 넘겨줬고 지금은 13% 수준이다. 반대로 대(對)중 수출 비중은 1990년 1%에도 미치지 못했는데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해 지난해 26%까지 올라갔다. 세계에서 경쟁이 가장 치열한 미국 시장과 제조업의 블랙홀이었던 중국 시장에 대한 수출 트렌드 이면까지 더 면밀히 들여다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국내외 경제 환경이 급변할수록 문제 인식의 속도와 정책 결정의 타이밍은 더없이 중요하다. 정책 입안자들과 경제 주체들 사이에 상시적이고 격의 없는 소통이 필요하다. 모든 판단은 객관적이고 정확한 데이터 분석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경제 상황의 변화가 수면 아래에서 구조적인 변화를 수반하고 있다면 정책도 새로운 패러다임과 수단들이 모색돼야 한다. 과거의 사고방식이나 선례만에 의존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적인 변화를 포착하기도, 대응책을 내놓기도 어렵다.

저성장기 정책 대응에 있어 빼놓지 않고 참고해야 할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인구구조 변화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이민정책을 갖고 있어서 고급 기술 인력이나 건강한 노동력이 상대적으로 원활히 공급된다. 또한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디지털 산업시대를 선도하고 있다. 창조력과 상상력을 토대로 한 세계 최고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이 모든 산업의 뒤를 받쳐 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책 대응에서도 결코 실기하지 않는 기민함이 돋보인다. 2008년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에 가장 먼저 대응해 6년에 걸쳐 4조 5000억 달러 규모의 양적완화(돈풀기)를 단행함으로써 내수를 진작하고 고용을 확대해 왔다. 최근에는 양적완화 마무리와 함께 금리 인상을 시작했지만 자국과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 예정된 금리 인상 일정을 고집하기보다는 유연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자국 내 유동성 확대에 몰두해 있는 유럽이나 일본과는 대조적이다. 가히 타산지석이라 할 만하다.
2016-05-13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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