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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오바마를 히로시마로 초청하기 이전에/이기철 국제부장

[데스크 시각] 오바마를 히로시마로 초청하기 이전에/이기철 국제부장

이기철 기자
이기철 기자
입력 2016-05-05 18:04
업데이트 2016-05-05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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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국제부장
이기철 국제부장
#1. 1945년 7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하늘은 당시 10엔짜리 지폐 모양의 전단으로 뒤덮였다. 미국은 일본 35개 도시 상공에서 전략 폭격기 B29로 6300만장의 전단을 뿌렸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보유한 당시 전단은 영어와 일본어로 ‘일본의 항복을 촉구하면서 일본 국민은 대피하라’는 취지의 내용과 함께 나가사키 등 폭격 예고 도시들을 적시했다.

#2. 그해 8월 6일 히로시마에 인류 사상 처음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그리고 그날도 일본 전역에 전단이 살포됐다. 트루먼도서관이 소장한 당시 전단은 ‘소련군이 일본에 선전 포고한 사실과 B29기 2000대 분량의 폭발력을 가진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투하된 사실’을 전하면서 무고한 일본 주민에게 도시를 탈출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당시 일본 정부는 민간인이 이런 전단을 갖거나 읽는 것을 금지시키면서 항복하지 않았다. 결국 사흘뒤 나가사키에도 원폭 투하라는 비극을 불러왔다.

이런 과거사를 반추하는 것은 히로시마가 다시 세계의 관심 도시로 급부상한 까닭이다. 이달 26~27일 일본 이세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방문을 검토한다는 뉴스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오랫동안 그의 히로시마 방문에 공을 들여 왔다.

백악관은 아직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 여부를 명확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외신을 종합해 보면 그의 히로시마행(行)은 확실시된다. 만약에 성사된다면 이는 인류를 향해 원자폭탄 투하를 처음 강행한 미국의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첫 방문이어서 역사적 함의가 매우 크다. 퇴임을 9개월가량 남겨 둔 오바마 대통령이 ‘핵무기 없는 세상’이라는 ‘업적’을 또 하나 쌓기 위해 히로시마를 방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주창한 그는 취임 첫해인 200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 사안에 대해 한국이나 중국은 눈여겨보고 있다. 동북아 정세의 복잡성 탓이다. 원폭 피해뿐만 아니라 원폭이 왜 투하됐는지도 깊이 살펴봐야 한다. 세계대전에서 가해국인 일본이 그의 방문을 계기로 마치 피해국인 것처럼 코스프레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그가 사과 발언을 하지 않더라도 방문 자체가 사죄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질 소지가 다분한 까닭이다.

일본이 오바마 대통령을 히로시마로 초청하기 이전에 현직 일본 총리가 기습공격을 감행한 하와이 진주만을 먼저 찾는 것이 마땅하다. 또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수많은 무고한 시민이 희생당한 중국 난징도 찾아 머리를 숙여야 한다. 특히 일본 총리는 살아 있는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에게도 직접 찾아가는 것이 순리다.

그런데도 세계 첫 피폭 국가인 일본은 언제든지 무기로 전환할 수 있는 핵물질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이 300㎏의 무기급 플루토늄을 반환하라고 했을 때 전 세계가 깜짝 놀랐다. 일부 국제 연구기관은 일본이 1350개의 핵탄두를 만들 수 있는 핵물질을 보유한 것으로 분석한다. 지난달 아베 신조 정부는 ‘비핵 3원칙’을 엄격히 준수한다면서도 “핵무기 사용은 위헌이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세계대전 때 자신들이 저지른 잔악한 행위에 대한 반성 없이 대량의 핵물질을 보유한 일본에서 외치는 ‘핵탄두 숫자 공개’와 ‘핵무기 감축’ 같은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것이다.

chuli@seoul.co.kr
2016-05-06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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