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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진실유포죄’/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론] ‘진실유포죄’/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입력 2016-03-14 18:08
업데이트 2016-03-14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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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 대학원 교수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 대학원 교수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29일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해 7대2로 합헌 판결을 내렸다. 온라인에서 타인에 대해 진실을 말해도 명예훼손을 적용해 형사처벌을 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70조 1항을 존치시킨 결정인데 답답하기 그지없다.

헌재의 이 판단은 노인회 간부와 회원들 간 명예훼손 소송 사건에서 비롯됐다. 노인회 간부 내외가 회원들에게 폭행·폭언을 했고, 회원 중 한 명이 그 상황을 인터넷에서 거짓 없이 담담하게 설명했다. 욕설도 없었다. 특히 노인회 간부 내외 중 한 명은 폭행죄 유죄 확정 판결까지 받았다. 그런데도 폭언·폭행의 가해자가 회원에게 명예훼손 고소를 해서 유죄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타인에게 폭언·폭행을 하는 걸 부끄러워할까. 이런 잘못을 본 사람들이 이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는 형사처벌을 각오해야 한다면 부패와 부정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물론 진실이라도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내용은 처벌돼야 할 것이다. 성행위 동영상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우리 법은 그렇지 않은 것들도 다 처벌한다. 체불임금이나 불공정거래 등을 사실대로 밝힌 이들도 명예훼손으로 처벌될 수 있다.

누구나 이런 사안들까지 프라이버시로 보호돼야 한다고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는 범죄 수사나 언론 보도 등 사회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그런 행위를 해 놓고 사생활로 보호받기를 원하는 것은 마치 창문을 연 채 샤워를 하면서 이를 우연히 본 행인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하철에서 다른 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약자를 폭행해 놓고 동영상이 온라인에 올라왔다고 ‘신상털이’니 개인정보 침해 등을 주장할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물론 현행법에서도 공익적인 목적으로 발설하는 진실은 처벌되지 않는다. 하지만 공익이 너무 좁게 해석된다. 폭행, 체불임금, 불공정거래 등은 모두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들이다. 해당 피해자들이 이를 공론화하면 법원은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기보다는 피해에 대한 구제를 받기 위해서 한 것이니 사익을 위한 행위”라며 ‘공익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피해 사실을 가장 잘 아는 피해자가 글을 올렸다고 공익적이지 않다는 논리이니 답답한 노릇이다.

2014년 1월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전 직원이 청와대 신문고에 과적 관행과 자신의 임금체불 사실을 올렸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임금체불 문제만 해결하고 말았다. 만일 이 사실이 인터넷상에 널리 알려져 세월호 학부모 몇 명에게라도 전달됐다면 비극을 막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직원들이 명예훼손 형사처벌의 위협을 무릅썼어야만 가능했을 일이다.

‘공익적이지도 않은 일로 타인의 약점을 드러내는 건 제재하는 것이 옳다’는 논리가 있다. 요즘 이런 논리의 나무에서 ‘잊혀질 권리’라는 과일들도 열리고 있는 것 같다. 과연 개인들에게 “공익적인 말만 하라”는 집단주의적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불법만 아니라면 자신이 믿는 대로 말할 수 있다’는 다원주의야말로 표현의 자유의 핵심이 아닐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예를 들어 어느 변호사가 12년 전에 자신의 주택을 경매당했다는 사실에 관심이 없겠지만 해당 시기 법조인들의 경제 사정을 연구하는 연구가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보일 수 있다. 우리가 ‘잊혀질 권리’에서 건질 것이 있다면 사람들이 과거의 과오 때문에 불합리하게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교훈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관련 정보를 억제하려고만 하는 것은 사회의 갈등을 은폐하고 실체적 문제의 해결을 지연시킬 뿐이다. 타인의 과거를 알 수 없도록 법적으로 차단하는 방식을 통해서만 서로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다면 그 사회는 진정한 관용의 문화를 성숙시킬 수 없다.

미국, 독일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진실 유포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처벌하지 않는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이미 2011년 ‘일반논평 34호’로 진실에 대한 명예훼손 처벌 폐지를 권고했고, 지난해 11월 우리나라에 직접 다시 권고했다. 4·13 총선 뒤 꾸려질 20대 국회에 관련 법 개정을 촉구한다.
2016-03-1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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