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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28>짬뽕 삼국지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28>짬뽕 삼국지

김경운 기자
입력 2016-03-07 13:27
업데이트 2016-03-07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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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경기에는 얼큰하고 진한 국물을 찾는다는 속설이 맞는 것일까. 요즘 각가지 브랜드의 짬뽕 라면들이 출시돼 눈길을 끈다. 20년 전쯤 외환위기 직후에도 아주 매운 ‘핵짬뽕’, ‘불닭’, ‘마약 떡볶이’가 잇따라 등장해 얼얼한 맛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확 풀어준 적이 있다.

 고열에 볶은 돼지고기와 야채, 해물에 얼큰한 육수를 가득 부은 짬뽕을 먹으면 찬 바람에도 땀이 맺히고 속은 후련해진다. 짬뽕에는 ‘한·중·일 삼국지’가 담겼다. 중국에서 유래돼 근세기 일본에서 탄생했으나, 불꽃은 한국에서 뿜었기 때문이다. 음식에 대해 굳이 친권을 주장할 필요는 없다. 음식 문명은 스스로 퍼져 나가 더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짬뽕은 돼지고기와 닭뼈를 푹 고아 육수를 만든 뒤 오징어, 홍합, 새우, 해삼 등 해산물과 함께 다시 끓인다. 표고버섯, 죽순, 청경채, 양파 등 채소도 듬뿍 넣는다. 또 굴 소스, 생강, 마른고추 등 향이 강한 양념에다 고춧가루까지 들어가면 뻘건 국물에 뜬 기름기마저 입맛을 돋운다.

 넣는 식재료와 요리법을 달리해 볶음짬뽕, 해물짬뽕, 사천짬뽕, 삼선짬뽕 등 그 맛을 다양하게 바꾸고, 또 더할 수도 있다. 특히 제주에선 돼지고기에 잘 어울리는 숙주나물과 함께 감칠맛의 표고버섯을 넣기 때문에 마치 일본의 돈코츠 라멘과 비슷한 식감을 느낄 수 있다.

 짬뽕은 중국의 차오마?(차오면)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돼지고기와 닭고기 육수, 또 각종 채소를 볶으며 ‘불맛’을 느낄 수 있다. 제법 얼큰한 맛도 난다. 차오면은 근세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나가사키에 정착해 살던 한 중국인 요리사를 만난다. 그는 당시 일본에 머물던 중국인 부두 노동자와 유학생 등이 먹는 게 시원치 않은 모습을 보고 남은 식재료를 다 넣고 고향에서 먹던 차오면을 비슷하게 재현했다고 한다.

‘짬뽕’이라는 이상한 단어의 어원도 “식사했느냐”라는 뜻의 중국 지방 사투리인 “찌후앙→챵호”에서 온 것으로 여겨진다. 이 중국식 짬뽕을 점차 일본인들도 좋아하게 되면서 매운맛은 빼고 해산물과 채소를 더 많이 넣어서 단백한 나가사키 짬뽕을 만든다. 국물 색깔은 우동처럼 허옇게 바뀌었으나, 돼지고기 육수의 깊은 맛은 그대로다. 나가사키 짬뽕은 일본인들만의 국수로 발전한다. 또 일본어에서 이것저것 뒤섞어 두서없이 보이는 것을 ‘잔폰’이라고 하던 것과도 연관돼 결국 음식명이 ‘챵호→잔폰→짬뽕’으로 변한 게 아닐까. 우리말에선 ‘ㅁ’, ‘ㅇ’ 등 비음을 잘 사용한다.

 중국인 부두 노동자들은 조선의 인천항에도 모여들며 일본에서 먹던 차오면을 찾았을 것이다. 우리는 해방 이후에 한동안 허연색의 짬뽕을 먹었다. 1970년대 화교들이 운영하던 중국집을 한국인들이 인수하면서 차오면에 고춧가루를 뿌렸다. 손님들이 매운 국물을 좋아했기 때문이리라. 요즘은 중국에서도 한국식 차오면이라며 짬뽕에 대단한 관심을 보인다.

 다만 짬뽕은 고혈압 등에 좋지 않은 나트륨 함량이 높은 편이다. 1인분 기준으로 4000㎎인데, 세계보건기구(WHO)의 하루 권장 섭취량은 그 절반인 2000㎎에 불과하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해롭기 마련이다.

한편 짬뽕과 관계없이 일본이나 한국에는 각각 우동과 가락국수가 있다. 우동은 짬뽕의 볶은 기름이나 수북한 고명을 빼고 간단한 해물 육수로 깔끔한 맛을 낸다. 짬뽕처럼 굵은 면을 쓰기는 하는데, 얼마간 숙성을 시키고 발로 밟는 등 야무지게 치대면서 면의 쫄깃한 식감에 비중을 뒀다. 반면 가락국수는 우동처럼 그릇에 담긴 면에 이후 육수를 붓기는 하는데, 면발보다 국물의 시원함, 얼큰함, 구수함 등에 치중했다. 국물을 좋아하는 우리의 습성은 결국 요즘에 와선 국물과 생면을 아예 함께 끓여 걸쭉한 맛을 내는 칼국수를 가락국수보다 더 찾게 했다.

 유래를 알면 짬뽕에서도 중국이나 일본의 풍미를 살짝 느낄 수 있다.

 

 <웃기는 짬뽕> 시인 신미균

 

 5층에 있는 직업소개소에서

 신상명세서를 적고 나오는데

 문 앞 복도에 누가 먹고 내놓은

 짬뽕 그릇 보인다

 바닥이 보일 듯 말 듯 남은 국물

 1층까지 죽기 살기로 따라 내려오는

 참을 수 없는 냄새, 그 짬뽕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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