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 빼고 ‘현실주의’ 만난 무협

4일 개봉한 ‘자객 섭은낭’은 대만 출신 거장 허우샤오셴 감독의 신작이다. 지난해 이 작품으로 제68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그의 첫 무협 영화라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대개 중화권 시네 아티스트들은 무협 장르를 적어도 한 번씩은 건드려 왔는데 허우샤오셴 감독은 좀 늦은 편이다. 그는 자신의 ‘현실주의자적 기질’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자객 섭은낭’은 고위 관료의 딸로 태어났으나 운명의 장난으로 살수(?)로 키워진 뒤 한때 정혼자였던 사람에게 칼을 겨누게 된 자객 이야기다. 이 작품을 무협 영화라고 소개해야 할지 무척 망설여진다. 우리에게 익숙한 무협 영화란 하늘을 휙휙 날아다니고 땅을 쪼개거나 육체와 육체, 검과 검의 격돌이 멋들어져야 하는데 ‘자객 섭은낭’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결투는 중심이 아니다. 그의 기질이 다분히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예고편은 그 짧은 시간에 여러 액션 장면을 조금씩 보여 주는데 이 때문에 화려한 액션을 기대했다면 크게 실망한 채 극장 문을 나설 공산이 크다. 대사도 그다지 많지 않다. 감정 표현 또한 격정적인 대목이 드물다.

그렇다고 영화적인 즐거움이 없느냐, 그건 아니다. 여러 면에서 정적인 연출을 보여주면서도 비주얼에 있어서만큼은 절제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생략해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한다. 한국 관객은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신라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당나라에서는 신라를 거쳐 일본으로 가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그렇게 설정했다고 한다. 섭은낭과 동행하게 되는 청년이 원래 시나리오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호류지(法隆寺) 건축에 참여한 신라 장인 후예로 설정됐다고. 무협 마니아라면 장검과 활에 맞서 양뿔 모양의 단검을 휘두르는 섭은낭의 무예가 흥미로울 듯하다.

수치가 섭은낭 역할을 맡았다. ‘밀레니엄 맘보’(2001), ‘쓰리 타임즈’(2005)에 이어 허우샤오셴 감독과 세 번째 만남이다.

영화는 무협 소설의 원류인 당나라 전기(傳寄)문학의 한 조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원전에서의 섭은낭은 영화와는 다소 결이 다르다. 어린 아들과 함께 있는 암살 대상을 보고 주저하기도 하지만 결국 임무를 완수하기 때문이다. 섭은낭은 영화 ‘백발마녀전’의 원작자로 유명한 신무협 작가 량위성의 여러 작품에 등장하기도 한다. 관심이 있다면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12세 관람가. 105분.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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