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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로의 아침] 조족등/손원천 문화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조족등/손원천 문화부 전문기자

손원천 기자
손원천 기자
입력 2015-12-24 00:00
업데이트 2015-12-24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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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천 문화부 전문기자
손원천 문화부 전문기자
‘기름을 넣어 불을 밝히는 기구. 순라꾼이 야경을 돌 때 사용하던 등으로 대나무로 빗금 형태의 틀을 세우고 이미 사용한 한지를 여러 겹 붙여서 만든다.’ 조족등에 대한 사전적 정의다. 표현 그대로 발 아래를 비추는 등불이다. 사극에서 하인들이 들고 다니며 양반의 발 아래쪽을 비추던 등을 연상하면 이해가 빠르겠다.

조족등의 주재료는 나무와 한지다. 나무를 깎아 손잡이를 만들고 미끄러짐 방지와 장식용으로 10개의 홈을 판 뒤, 손잡이 끝에 구멍을 뚫어 끈으로 연결할 수 있게 했다. 바깥 마무리는 한지로 했다. 종이와 불은 상극인데, 대체 어떻게 둘을 타협시켰을까. 심지어 등 안쪽의 초 걸이를 180도 이상 왕복할 수 있게 해 등이 흔들릴 때도 수평을 유지하도록 제작한 솜씨엔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달항아리를 닮은 유려한 자태도 일품이다. 기능성만 강조한 현대의 등에 견줄 바가 아니다. 그러니 이를 위키피디아 방식으로 정의하면 ‘멋을 강조하되 기능성에 대한 고려도 잊지 않은 등’이라 할 수 있겠다.

최근 강원 원주 출장길에 조족등을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한지테마파크에서다. 고백건대 조족등이 있다는 사실조차 이때 처음 알았다. 멋을 알고 이를 생활에 응용했던 선조의 후손으로서 이렇게 부끄럽고 얼굴이 달아오를 수 없다. 한편으론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선조들의 훌륭한 유산을 우리는 왜 박물관에서만 봐야 할까. 우리는 왜 늘 서구적이고 현대적인 것들만 문명의 이기라고 생각할까.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인 것이란 명제가 등장한 건 꽤 오래전 일이다. 언제부터 회자됐는지 기억조차 희미하다. 그 탓에 낡은 수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관광 분야에서 이만한 가치를 가진 명제는 찾기 어렵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열광하는 건 한국적인 모습이다. ‘지구촌 식구들’ 모두가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단일화된 코드를 원하는 게 아니다. 외국인들이 먼 반도의 땅까지 풍차 보자고 오겠나, 양떼 보자고 오겠나. 우리가 ‘짝퉁’ 같은 풍경 좋아한다고, 그들도 그러리라 생각한다면 대단한 오산이다. 다소 불편해도 한국적 풍경을 고수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다시 조족등 얘기로 돌아가자. 가로등이 꼭 위에서 비춰야 할 이유는 없다. 도로처럼 기능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곳이 아니라면 발 밑이나 어깨 높이에 설치해도 무방하지 싶다. 공원 의자 옆, 혹은 조붓한 산책로에 조족등이 주르륵 내걸린 모습을 상상해 보자. 단순하고 단일화된 전등들이 늘어선 것보다 한결 멋스럽고 정감 넘치지 않겠나. 게다가 전통 문화도 계승할 수 있고, 그야말로 ‘장인정신’ 하나로 어렵사리 옛것을 이어 가는 기능 보유자들이 경제적으로 기를 펴는 부수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우리의 미적 감각을 세계에 알릴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터다. 우리 사회 전체가 발 아래 불 켜둘 곳이 없나 살펴봐 주길 원하는 건 이 때문이다. 어디 조족등뿐이랴. 선조들의 유산을 현대에 계승, 적용할 것들은 많고도 많다.

어찌 보면 관광은 아주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산업이다. 그러기 위해 많은 이들의 협조와 이해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는 산업이기도 하다. 그 첫걸음은 단언컨대 전통의 복원이다.

angler@seoul.co.kr
2015-12-2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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