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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그래도 사람이 미래다/김성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그래도 사람이 미래다/김성수 논설위원

김성수 기자
입력 2015-12-18 18:08
업데이트 2015-12-1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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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논설위원
김성수 논설위원
“어차피 50대가 되면 정상에서 다 만나요. 너무 아등바등 살 필요 없어요.” 기업 임원인 지인이 최근 이런 충고를 들었다고 전해줬다. 워낙 일에만 얽매여 사는 분이라 ‘우문’을 던졌다. “50대쯤에는 웬만큼만 일하면 다 자기 분야에서 최고 지위에 오를 수 있다는 뜻이냐”에 돌아온 ‘현답’은 예상과 달랐다.“그 나이가 되면 너 나 할 것 없이 다 회사에서 잘려서 놀죠. 등산 갈 일밖에 없으니 산꼭대기에서 모두 만나게 된다는 뜻이에요.”

웃음이 빵 터졌지만 뒷맛은 씁쓸했다. 하긴 ‘사오정’(45세면 정년)이니 ‘삼팔선’(38세에 명예퇴직)이니 하는 말도 이미 고어(古語)가 됐다. 하물며 50대까지 일하면서, 더구나 최고경영자(CEO) 자리까지 노린다니…. 순진한 생각이다. 그 전에 열에 아홉은 명예퇴직이니, 희망퇴직이니 하는 이름으로 회사를 떠난다. 대기업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무원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돈은 덜 받지만 최소한 정년은 보장돼서다. 이번에 처음으로 민간경력직 7급 공무원 80명을 뽑는 데 2700명이 넘게 지원했을 정도다. LG전자와 KT 등 대기업 직원을 비롯한 민간 엘리트들이 구름처럼 몰렸다.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된 기업들의 사정이 그만큼 나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번 세밑은 대기업의 감원 ‘칼바람’이 어느 해보다 거세다. 내년부터 정년이 60세로 연장되는 것을 앞두고 기업마다 퇴직인원이 늘고 있다. 올해 은행권에서만 3600여명이 희망퇴직을 했다. 재계 1위인 삼성도 역대 최대 규모의 임원이 옷을 벗었다. 지난 1년간 삼성전자를 비롯한 13개 주력계열사에서 5700명이 넘게 회사를 떠났다. 일부 기업들은 사원, 대리 등 20, 30대 직원들도 무차별적으로 희망퇴직 대상에 넣었다. 말이 좋아 희망퇴직이지 ‘희망’을 했을 리는 만무하다. 사실상의 강제 해고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올 1월에 입사한 스물두 살짜리 신입사원까지 감원 명단에 포함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없던 일이다. 1년도 안 돼 자를 걸 애초에 왜 뽑았느냐는 비난이 커졌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취준생’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심정이 얼마나 막막했을까 짐작이 간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생존을 걱정할 정도로 어렵다. 중국 건설기계 시장이 절반으로 쪼그라들어서다. 3분기까지 누적적자가 2500억원에 육박한다.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원칙이 있어야 한다. 회사가 어려워진 건 경영진의 책임이 가장 크다. 업무 파악도 아직 안 됐을 신입사원이 책임을 뒤집어쓸 일이 아니다. 제대로 일해 볼 기회조차 주지 않고 사람을 자르는 건 경솔한 결정이다. 그룹 이미지가 바닥에 떨어지자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1~2년차 신입사원은 희망퇴직 대상에서 제외하라고 지시했다. 오너 회장이면서도 애초에 감원 대상에 신입사원이 포함된 것을 몰랐다는 얘기인지 아니면 알긴 알았는데 이렇게 문제가 커질 줄 몰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뜻인지 확실치 않다. 어느 쪽이라도 재계 10위의 그룹이 해서는 안 될 일이다.

1~2년차 신입사원의 희망퇴직은 반려됐지만 ‘흙수저론’이 불거지는 등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희망퇴직을 거부한 이 회사 직원들은 강제로 휴대전화를 반납한 채 ‘이력서 쓰기’ 같은 재취업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그룹사 임원 자녀인 두산인프라코어 직원들은 미리 두산면세점 등 계열사로 피신시켰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30억원의 청년희망펀드 기부까지 약속한 박 회장이 정작 청년 취업난의 심각성을 간과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박 회장은 18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자격으로 회장단과 함께 청와대를 방문해 박근혜 대통령과 오찬을 했다. 박 대통령은 “우리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이 제대로 될 수 있을지 요즘은 걱정으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회장도 “어려움은 있지만 우리 경제가 마음을 다해서 청년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도록 분발하겠다”고 약속했다. 청년들의 미래를 위해선 일자리가 최우선이다. 청년고용을 비용이 아니라 투자로 봐야 하는 이유다. ‘사람이 미래다’라는 두산그룹의 광고카피는 백번 옳은 말이다. 기업을 살리는 것도, 경제를 일으켜 세우는 것도 사람이 한다. 그래서 여전히 사람이 미래다.

sskim@seoul.co.kr
2015-12-1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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