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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고독할 수 있는 용기/김재원 KBS 아나운서

[문화마당] 고독할 수 있는 용기/김재원 KBS 아나운서

입력 2015-12-16 17:48
업데이트 2015-12-16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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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휴가를 다녀왔다. 가족과 오키나와에서 나흘, 혼자서 라오스에서 나흘을 더 보냈다. 떠나기 전 계획을 들은 동료들은 어떻게 그런 휴가를 보낼 수 있느냐는 말로 부러움을 덧붙였다. 진정한 휴가는 혼자 보내는 것이라는 뜻이리라. 따뜻한 대자연이 선사하는 여유 속에서 가족과 함께한 오키나와는 낙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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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KBS 아나운서
김재원 KBS 아나운서
인천공항에서 가족과 작별하고 환승 게이트에서 라오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에는 골프 여행을 떠나는 중년 남성들로 가득 찼다. 내가 라오스 여행에서 찾고 싶었던 것은 고독감이었다. 요즘 우리는 지나친 소통으로 고독의 자유를 빼앗겼다. 어디서도 나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는다. 연말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심지어 온라인에서도 사회화라는 명분하에 혼자 있을 자유가 없다. 원하지 않는 단체 방에서 부르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사회화는 타인을 의식하고 남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뜻이다. SNS를 멀리하던 나는 급기야 용기를 내 카카오톡 탈퇴를 단행했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과도한 소통에 지쳐 있던 나는 지금 만족한다.

라오스 방비엥. 배낭 여행자의 천국. 오십여 나라를 여행한 내게도 꿈의 여행지였다. 하지만 그곳은 이미 코리아타운이었다. 꽃보다 청춘들의 여행을 보고 우르르 따라나선 한국인들 덕에 방비엥은 이미 몸살을 앓은 뒤였다. 한국어 간판이 가득하고, 허름한 숙소도 와이파이는 필수다. 가게는 한국 식품으로 즐비했고, 칠봉이의 선택을 외치는 식당은 홍대 앞을 방불케 한다. 카약과 튜빙을 알선하는 여행사도 이미 한국인이 점령했다. 일부러 외곽에 있는 현지인 여행사를 찾은 나는 한국인이 쓰는 돈 절반은 한국인이 가져간다는 불평을 들어야 했다. 꽃보다 아름다운 누나가 되고 싶어 남편들을 꼬셔서 혹은 버리고 떠난다는 크로아티아도 여행객 1위 국가가 대한민국이란다. 한국인의 동조 성향이 그대로 나타난 예다.

시청자와 방송 프로그램의 소비자 브랜드 관계를 연구한 논문에 따르면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사람은 동조 성향과 대인관계 지향성이 강하고, 교양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존감이 높단다. 성향의 차이는 프로그램 선호는 물론 여행지 선택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국인의 끓는 냄비 같은 동조 성향은 배낭 여행자들의 천국을 코리아타운으로 만들고 상권을 확장시킨 채 서서히 식어 가고 있다. 방비엥은 지금도 공사 중이다.

그럼에도 나는 고독을 누렸다. 2만원대 방갈로에서 메콩강의 풍광을 즐겼고, 발코니 해먹에 누워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었다. 현지인 여행사에서 남들 안 가는 코스를 선택해 카약과 튜빙으로 메콩강을 혼자 누볐다. 온갖 거리 음식과 신선한 과일은 나 홀로 여행의 훌륭한 메뉴였다 그러고 보면 먹거리조차 나만을 위해 선택한 기억이 별로 없다. 혼자 있다 보니 절로 나를 돌아볼 여유도 생겼다. 도시의 생각은 순전히 타인을 의식한 것뿐이다.

최근 한 유명 연예인이 고백한 불안장애도 고독을 수용하는 연습이 부족했기 때문은 아닐까? 동조 성향을 따라 분주하게 사는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자아성찰을 위한 고독이다. 나이가 들수록 기다리는 것은 고독감이다. 어느 해직 기자의 남미 여행기 제목처럼 남자도 자유가 필요하다지만 현실은 해직이나 돼야 울며 겨자 먹기로 멀리 떠날 수 있을 뿐이다. 고독할 수 있는 용기를 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멀어 버릴 것이다. 참, 나도 혼자 떠나는 여행은 13년 만이다.
2015-12-1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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