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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신뢰와 남북관계/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대외협력실장

[열린세상] 신뢰와 남북관계/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대외협력실장

입력 2015-12-10 18:04
업데이트 2015-12-10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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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8·25 합의 이후 처음 열리는 남북 당국회담은 박근혜 정부의 안보, 외교, 대북정책을 관통하는 주요 키워드인 ‘신뢰’의 가시화라고 볼 수 있다. ‘신뢰’와 ‘과정’에 초점을 두고 있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서로 대화하고, 약속을 지키며, 호혜적으로 교류·협력하는 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상대방과의 신뢰를 축적해 나가자는 것이다. 즉 대화와 교류·협력을 통해 신뢰 형성이 상호 이익이 된다는 점을 확신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북한의 변화와 남북관계 발전을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신뢰’라고 했을 때 몇 가지 점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신뢰’는 ‘믿음’ 및 ‘확신’과 어떻게 구별되는가. 둘째, 신뢰가 쌍방향으로 작동되고 있는가. 셋째, 신뢰의 중요한 기본 목표는 불확실성에서 오는 위협을 차단하는 것인데, 목표와 수단이 제대로 배열되어 있는가. 마지막으로, 우리 내부의 신뢰, 즉 정부와 국민 간의 신뢰, 정부와 국회 간의 신뢰, 여당과 야당 간의 신뢰, 부처 간의 신뢰 등이 남북 간의 신뢰를 형성해 가는 데 충분한 동력을 주고 있는가 등이다.

‘믿음’은 자신이 믿는 것을 ‘옳다’고 추정하지만, 그 결과는 알지 못하는 상태인데 북한과의 관계에서는 적어도 두 가지 상충하는 믿음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북한이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남북 간의 신뢰 형성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기대한다는 점이다. 규범 등을 통해 강제적으로 신뢰를 형성하는 ‘확신’은 군사연습 통보, 정보교환, 상호방문, 사찰, 합동군사훈련 등의 조치가 수반되는 신뢰구축조치(CBM)를 통해 상대방의 미래 행동을 협력으로 나가게 하거나 최소한 위협이 되지 않는 상태로 만드는 것인데, 북한과의 신뢰구축 조치는 남북관계가 상당한 정도 진전됐을 때 가능하다는 ‘믿음’에 젖어 있다.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변화를 강제하는 ‘확신’의 중간 어딘가에 있는 ‘신뢰’는 규범만큼 강한 규제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재차 신뢰 관계가 형성되면 상대방에게 나의 기대를 벗어나는 행위를 억제할 수 있고, 상대의 행위를 예측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상대방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뢰’의 개념 속에는 각자 자신의 행동과 선택이 옳다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즉, 신뢰를 만들어 나가는데 상대방의 행동 변화에만 초점을 둔 일방향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남북 사이에 상대방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지속되는 한, 긴 과정이라는 시간을 통해 ‘신뢰’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가정이다. 당국회담에서 양측이 일방향으로 내가 원하는 이슈만 던져 상대방에게 수용 여부만을 강제한다면 8·25 합의 이후 남북이 새롭게 지향하는 당국회담 개최 의의는 퇴색하게 된다. 장기간 회담이 교착되어 왔던 이유를 남북 모두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회담장에서 또 반복한다면 식상한 회담이 될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의 악순환 되풀이로 끝날 수 있다. 회담을 통해 남북 모두가 ‘윈윈’ 하는 결과에 이를 때 당국회담의 개최 의의를 찾을 뿐만 아니라 ‘신뢰’가 가동된다고 볼 수 있다.

‘신뢰’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상대방에 대한 불확실성을 얼마만큼 줄일 수 있는지이다. 비교적 합의에 이르기 쉬운 이슈, 즉 교류와 경제 협력 및 인도주의 사안에만 회담이 집중된다면 지난 20년 넘는 남북관계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불안정이 이전보다 더 나아졌다고 볼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상대방의 위협을 직접적으로 줄이기 위한 남북군사회담을 빠른 시일 내에 재개함으로써 상호 불안정 요소를 해소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북 간 신뢰가 형성되기 위한 동력은 바로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로부터 나온다. 남북 간의 극심한 경제력 격차와 이와는 무관한 북한의 도발 및 위협 증대 등 남북관계의 비대칭성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접근방법 간의 충돌과 의견 대립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안정과 번영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은 동일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부에 대한 국민의 믿음과 신뢰가 큰 힘으로 작동되어야 할 것이다. 남북 간의 신뢰 형성은 남한만의 노력으로, 정부만의 노력으로 절대 만들어질 수 없다.
2015-12-1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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