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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직장인을 위한 서바이벌 IT](14) 디지털 치매

[김지연의 직장인을 위한 서바이벌 IT](14) 디지털 치매

입력 2015-11-23 14:45
업데이트 2015-11-26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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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똑똑해질수록 사람은 더 멍청해진다.” 500자리의 숫자를 단 한 번 듣고 기억해내는 기네스 기록 보유자 에란 카츠의 말이다. 그는 기술 발전이 뇌의 능력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두뇌를 부지런히 사용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최근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대상자의 34%가 부모나 형제의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답하였다. 가족 이외에 아는 번호가 거의 없다는 응답자도 절반이 넘었다. 디지털 기기에 지나치게 의존해서 기억력이나 사고력이 떨어지는 ‘디지털 치매’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독일의 뇌의학자인 슈피처는 이것을 ‘정신적 추락’이라고 했다.(라틴어로 치매는 하락을 뜻하는 de와 정신이라는 mens가 합쳐진 단어). 사람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기계들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해준다는 사물인터넷 세상이 되면 우리가 지식을 습득하고 생각하는 방식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함께 생각해보자.
 
 

Nomophobia (출처 www.geeksnack.com)
Nomophobia (출처 www.geeksnack.com) Nomophobia (출처 www.geeksnack.com)

 
이제 스마트 기기는 우리와 잠시도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더듬거리며 스마트폰을 찾고 잠들 때까지 손에서 놓지 않는다. 휴대전화가 없으면 초조하거나 불안을 느끼는 증상을 노모포비아(nomophobia)라고 한다. ‘노 모바일폰 포비아(no mobile phone phobia)’를 줄인 말인데 휴대전화 금단현상 정도의 의미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생각하는 사람인 호모 사피엔스에 빗대어 휴대전화 없이 살아가기 어려운 인류,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보도했다. 이 새로운 인류가 하루에 접하는 정보는 한 세기 전 사람들이 평생 접하던 것과 맞먹는다. 그러다 보니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소한 일상의 선택이나 결정조차도 스스로 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점심메뉴는 배달앱이 제공하는 ‘아무거나 서비스’로 정하고, 옷은 치수만 선택하면 쇼핑몰에서 골라주는 ‘복불복 이벤트’로 산다. 심지어 여자친구에게 고백을 해야 할지를 스마트폰 앱에 물어보기도 한다. 일명 ‘햄릿 증후군족’, ‘결정 장애족’. ‘아마도 세대(Generation Maybe)’로 불리는 현상이다. IT 기술이 발전할수록 기억이나 판단과 같이 두뇌가 해야 할 일을 점점 외부의 기계에 맡기는 것이 낯선 일은 아니다. 앞에서 육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웨어러블을 바깥의 뼈대라는 의미로 외골격(外骨格, Exoskeleton)이라 불렀다. 이제 스마트 기기와 인공지능의 발달은 외골격을 넘어 인간의 지적 단계에까지 다가서고 있다. LG business insight의 ‘외뇌 시대가 오고 있다’에서는 외부에서 나를 대신하여 두뇌의 역할을 해주는 것을 내 몸 밖의 뇌라는 뜻으로 엑소브레인(外腦, Exobrain)이라고 불렀다. 미래에는 웨어러블 로봇을 입고 외뇌를 연결하면 슈퍼맨이 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Amazon Data Center(출처: datacenterfrontier.com)
Amazon Data Center(출처: datacenterfrontier.com) Amazon Data Center(출처: datacenterfrontier.com)

 
 뇌의 기능 중 ‘기억’은 이미 많은 부분을 외부의 기계에 의존하고 있다. 컴퓨터저장 매체와 클라우드에 정보를 보관하거나 필요한 것을 검색으로 찾는 것도 어찌 보면 기억력의 한계를 보완하려는 것이다. 클라우드는 인터넷에 연결된 저장 공간과 소프트웨어와 같은 IT 자원을 빌려 주는 서비스이다. 아마존이나 구글과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눈독을 들이는 시장이기도 하다. 컴퓨터 회사 델(Dell)이 IT 업계 최대 규모인 670억 달러(약 77조 원)를 들여 인수한 EMC도 데이터를 관리하는 스토리지 회사이다. 사람과 사물이 만들어 내는 데이터는 미래의 석유와도 같은 중요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구글 드라이브, 드롭박스, 하이브, 에이드라이브와 같이 개인에게 수GB에서 수십GB의 저장 공간을 무료로 제공하는 업체도 20군데가 넘는다. 구글에서 내놓은 ‘구글포토’는 사진과 동영상을 무제한으로 올릴 수 있다. 기억의 보조 공간인 외부 스토리지의 용량은 무한대로 커지고 있다.
 이제 이렇게 방대한 정보를 저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원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도 문제다. 지구상의 디지털 데이터양은 약 8제타바이트(ZB)로 8억 개의 미국 의회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정보의 양과 맞먹는 정도라고 한다. 20여 년 전 신입사원 시절에 논문이나 특허를 조사하는 날은 외근을 나갔다. 그때는 도서관과 특허청 서가에 주저앉아 두툼하게 제본된 책장을 넘기며 자료를 찾았다. 이제는 인터넷 검색 없이 정보를 찾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요즘은 단순히 단어나 문장을 찾는 수준을 넘어 내가 관심 있는 것을 알아서 추천해 주는 개인 서비스 단계까지 왔다. 머지않아 검색과 결합된 음성인식 비서는 말만 하면 세상의 지식을 마치 내 머릿속에 있는 것처럼 쓸 수 있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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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 Watson@Jeopardy(출처: socialmediab2b)
IBM Watson@Jeopardy(출처: socialmediab2b) IBM Watson@Jeopardy(출처: socialmediab2b)

 
 외뇌는 기억력을 보완해줄 뿐만 아니라 막히지 않는 길을 알려주는 것과 같이 상황을 인식하고 적절한 판단을 하기도 한다. 최근 컴퓨터에게 학습을 시켜 지능을 높이는 기계학습(머신러닝, Machine Learning) 열풍이 불고 있다.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은 “5년 뒤 머신러닝이 모든 산업에 적용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중 사람의 뇌 신경망을 모방하여 사물을 인식하거나 추론하는 딥러닝(Deep Learning)은 인공지능의 핵심 기술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미 특정 분야에서는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는 기계도 등장했다. 1997년 IBM의 인공지능 컴퓨터 딥 블루(Deep Blue)는 세계 체스 1인자 게리 카스파로프를 꺾고 챔피언이 되어 화제를 모았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2011년, IBM은 지구상에서 가장 똑똑한 컴퓨터인 왓슨(Watson)을 내놓았다. 왓슨은 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퀴즈쇼 제퍼디(Jeopardy)에서 인간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74연속 우승 기록 보유자인 켄 제닝스와 상금왕 브레드 루터도 왓슨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 뒤로 왓슨의 속도와 성능은 24배가 향상되었고 덩치는 십분의 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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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인식 비서(출처: www.phonearena.com)
음성인식 비서(출처: www.phonearena.com) 음성인식 비서(출처: www.phonearena.com)

 
 최근 글로벌 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인공지능 연구에 뛰어들면서 기술 경쟁이 뜨겁다. 애플 시리(Siri), 구글 나우(Now), 아마존 알레사(Alexa),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타나(Cortana), 페이스북의 M과 같은 인공지능 비서는 이미 우리 곁에 와있다. 이런 기술을 바탕으로 모든 사물이 연결되는 만물인터넷 시대가 되면 두뇌 밖의 뇌에 더 많이 의존하며 살 것이다.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의 저자 니콜라스 카는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인터넷을 통해 스쳐가는 파편적 정보가 우리의 사고방식을 얕고 가볍게 만든다고 경고한다. ‘구글이 우리를 바보로 만들고 있는가?’라는 그의 기고문에 등장하는 한 병리학자의 고백을 들어보자. “나는 이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와 같은 긴 글을 읽는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심지어 블로그 포스트가 서너 단락만 넘어가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필자의 글이 칼럼치고는 긴 편이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음부터는 내용을 줄이든지 쪼개서 싣든지 해야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R&D경영연구소 소장 jyk9088@gmail.com
 
 <약력>
 ▪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연구임원(전) ▪ 삼성중국연구소 소장(전) ▪ 한국과학기술원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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