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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이불여일행] “모두다 미생(未生)”…바둑의 매력

[백문이불여일행] “모두다 미생(未生)”…바둑의 매력

김유민 기자
김유민 기자
입력 2015-11-16 16:23
업데이트 2015-12-17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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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도원 3단이 바둑의 기본규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문도원 3단이 바둑의 기본규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작년 이맘때 드라마 ‘미생’에 푹 빠졌다. 바둑밖에 몰랐던 장그래는 자신만의 바둑판을 그리고 다음 수를 생각했다. 승부수를 두려다 자충수를 놓기도 하면서, 깨지고 부딪히고 결국엔 성장했다. ‘미생’이 그리는 직장인의 애환은 삶과 맞닿아있고, 대사들은 콕콕 박혔다.

바둑의 세계가 궁금해졌다. ‘미생’을 비롯해 바둑을 소재로 한 영화 ‘신의 한 수’와 ‘스톤’을 재밌게 봤지만 정작 스토리 중간마다 나오는 바둑 기보를 이해하지 못해 답답했다. 평소 바둑을 즐겨두시는 아버지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실제로 ‘미생’을 계기로 바둑을 시작하는 일반인들이 많다고 한다. 여자 프로기사들과 힘을 모아 ‘꽃보다 바둑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문도원 3단은 “처음 바둑을 배우는 분들은 ‘미생’과 ‘고스트 바둑왕’을 보고 오는 분들이 꽤 많다. 집중력을 키우고 싶은 어린이나 ‘친구들과 바둑을 둘 때 꼭 이기고 싶다’며 어르신도 배우러 오신다”고 말했다.

‘미생’의 장그래처럼 문도원 3단도 여섯 살 때 처음 돌을 잡았다. “부모님의 권유로 다니기 시작했는데,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과 잘 맞아 계속하게 됐고 프로에 입단했다. 바둑을 처음 뒀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재밌다. 그리고 앞으로가 더 재밌을 것 같다. 바둑은 하면 할수록 무궁무진하고 배울게 많다.”

생전 처음으로 접하는 바둑. 규칙은 의외로 쉽지만 실전은 만만치 않은 머리싸움이다.
생전 처음으로 접하는 바둑. 규칙은 의외로 쉽지만 실전은 만만치 않은 머리싸움이다.
바둑에 관심은 있었지만 ‘행’하지 못했던 주된 이유는 ‘바둑은 어렵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검은 돌과 하얀 돌을 번갈아 놓는데 한번 놓는 데도 장고(長考)를 하고, 경력이 많고 단수가 높다고 이기란 법이 없다. 고도의 두뇌게임이지만 바둑을 실제로 배워보니 규칙은 의외로 간단했다. 몇 가지 기본규칙을 익히니 하루만에 9X9 판으로 실전바둑도 가능했다. 실제 바둑판은 19X19로 이루어져 있다.

흑과 백, 공평하고 치열한 세계

흑이 먼저 시작하고, 백이 그 다음이다. 먼저 시작하는 흑이 집을 짓기에 유리하지만, 게임이 끝나고 백은 ‘덤’으로 6.5의 가상의 집을 가지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다. 보통은 둘 중 고수가 백돌을 가지는 게 원칙이다. 실력이 비슷할 경우에는 ‘돌 가리기’로 결정한다. ‘돌 가리기’는 홀짝 맞추기라고 생각하면 쉽다.

공평하지만 그만큼 치열하다. 교대로 바둑판 위 교차점 위에 한 수 씩만 둘 수 있다. 그 수는 악수가 되기도 신의 한 수가 되기도 한다. 나의 수만 생각해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상대방의 다음 수, 그 다음 수까지 생각하면서 신중하게 두어야하기 때문에 바둑을 두는 곳은 겉으론 조용해 보여도 안에서는 어느 곳보다 치열하다.

한 집이라도 더 많은 쪽이 승리한다. 바둑을 다 끝내면 집을 센다. 이걸 계가라고 한다. ‘집’은 같은 색의 돌로 울타리를 친 곳을 말한다. 사실 초보자에게는 집짓기보다 ‘돌 따내기’가 짜릿하다. 바둑에서 활로(活路)는 대각선이 아니라 직선인데 상대방의 활로를 다 막으면 그 안의 상대방 돌을 따서 자신의 돌 뚜껑에 올려 둔다. 돌을 좀 땄다고 방심해서는 안 된다. 큰 그림(집)을 보고 마인드컨트롤을 해야 한다.

‘패’ 모양을 구분하는 것도 필요하다. 나와 상대방이 번갈아 두면 똑같은 모양이 무한 반복되는 것이 패다. 그렇기 때문에 패 모양에서 한 사람이 먼저 두면 그 다음 사람은 바로 두지 못한다. ‘착수금지’는 반드시 알아야하는 규칙이다. ‘착수’란 바둑판 위에 바둑돌을 놓는 것을 말하는데, 몇 가지 예외가 있다. 활로가 다 막힌 곳은 둘 수 없다. 다만 ‘잡아낼 수 있는 돌’이 있으면 착수금지가 아니다. 이를 잘 구분하는 것이 승패를 결정한다.

드라마 <미생>속 어린 장그래가 바둑을 배우는 모습.
드라마 <미생>속 어린 장그래가 바둑을 배우는 모습.
‘미생’ 아직 살아있는 돌… 누구나 자신만의 바둑이 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바둑이 있다’, ‘바둑판 위에 의미 없는 돌은 없다’, ‘정신력은 강한 체력에서 나온다’ 바둑을 배워보니 ‘미생’의 뜻이 더 와 닿는다. 완전히 죽은 돌을 뜻하는 사석(死石)과는 달리 미생은 완생할 여지를 남기고 있는 돌을 의미한다.

바둑의 10가지 비결인 <위기십결>은 인생의 명언과 꼭 닮아있다.
1. 이기려고 욕심을 내면 이길 수 없다
2. 상대의 세력으로 들어갈 경우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마라
3. 상대를 공격할 때, 나의 능력과 돌의 결점을 먼저 살펴라
4. 중요하지 않은 내 돌을 버리더라도 선수는 빼앗기지 마라
5. 눈앞의 작은 이익을 탐내지 말고, 넓게 보고 중요한 곳을 차지하라
6. 위험을 만나면 손을 떼던가 시기가 올 때까지 건드리지 마라
7. 경솔하게 빨리 두려고만 하지 말고, 시기가 올 때까지 건드리지 마라
8. 상대가 움직이면 같이 움직이고, 멈추면 같이 멈추어라
9. 내 돌 주위의 상대가 강할 경우 내 말의 안전을 꾀하라
10. 상대와 싸울 때 내 돌이 외롭거든 우선 평화를 택해라

‘인생이 바둑 안에 있다’란 말도 무리가 아니다 싶다. 상대의 마음을 읽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바둑의 매력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 승패가 분명한 게임이지만 집착하지 않고, 복기하며 승패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도 인상 깊었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바둑을 두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을 비교했을 때 바둑을 두는 사람은 기억력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활성화되고, 공간 지각력도 높다고 한다. 바둑은 일대일로만 둔다는 것도 편견이다. 남녀가 한 팀을 갖춰 네 사람이 두는 페어바둑을 비롯해 여러 명이 팀을 갖춰 두는 연기 바둑, 한 명이 여러 명을 상대하는 다면기, 여러 사람이 팀을 이뤄 상담을 통해 최선의 수를 찾아내는 상담바둑 등 다양하다.

<이창호 정통바둑 시리즈>, <이다혜의 열려라 바둑> 등이 바둑 입문서로 자주 언급된다. 바둑의 기본 규칙과 초급 단계로 진입하기 위한 바둑의 기술이 담겨 있다. <오로바둑>, <바둑 퀘스트> 등 스마트폰 앱을 이용하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바둑을 즐길 수 있다.

백문이불여일행(百聞不如一行) 백번 듣고 보는 것보다 한번이라도 실제로 해보는 것, 느끼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다. ‘보고 듣는 것’ 말고 ‘해 보고’ 쓰고 싶어서 시작된 글. 일주일이란 시간동안 무엇을 해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나누고 이야기하고 싶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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