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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좀비기업과 시장 원리/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시론] 좀비기업과 시장 원리/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입력 2015-11-02 18:06
업데이트 2015-11-02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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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좀비’가 최근 국내 경제 뉴스에 등장하고 있다. 오랫동안 이윤을 내지 못해 기업의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정부의 금융 지원을 받아 간신히 연명하고 있는 좀비기업 이야기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시장 경제에서 기업의 역할은 이윤 극대화에 있다. 이 논리에 따르면 이윤을 내지 못하고 손실을 보는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되는 것이 마땅하다. 영업 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입으로 이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부실 기업에 정부가 보증을 서 주거나 상환이 도래한 부채의 만기를 연장해 주는 식으로 기업 수명을 연장해 주는 것은 마치 죽은 시체에 가짜 생명을 불어넣듯 무의미한 일이다.

정부 지원을 받은 좀비기업이 끝내 회생하지 못하고 파산하면 정부가 보증한 부채는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전가된다. 기업이 경영을 잘못해 발생한 손해를 국민 혈세로 충당해야 한다는 의미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 경제가 뚜렷하게 개선되지 못한 상황에서 좀비기업의 비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에 부실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정부도 대책을 서두르고 있다.

좀비기업의 문제는 이들이 파산하는 경우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정부 개입이 없었다면 시장에서 퇴출됐을 기업이 시장에 남아 있으면 시장 전체의 생산량이 증가해 수요공급 법칙에 따라 제품의 시장 가격은 떨어지게 된다. 가격 하락은 기업의 이윤을 떨어뜨리고 이윤이 줄어든 기업은 투자를 줄이게 된다. 자연히 고용 창출이 어려워진다.

좀비기업이 시장에 오래 있을수록 정상 기업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더욱 커진다. 만일 좀비기업이 정상적으로 퇴출되면 정상 기업은 파산한 기업의 생산 장비를 싸게 사들여 생산원가를 절감할 수도 있고, 좀비기업의 인력을 추가로 고용해 생산량을 확대할 수도 있다. 즉 좀비기업이 시장에 그대로 존재하는 탓에 정상 기업이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고 새로운 직원을 고용할 여력이 줄어들게 돼 시장의 성장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좀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필요한 이유다.

그런데 구조조정에 앞서 좀비기업에 대해 좀 더 꼼꼼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초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경제가 나빠지고 많은 부실 기업이 발생하자 정부의 금융 지원이 대폭 이루어졌는데 결과적으로 일본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가 부실 기업에 지원한 까닭은 무엇일까. 갑작스레 많은 기업이 파산을 하면 당장 일자리를 잃게 될 수많은 근로자와 그 가족들을 간과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필자는 최근 우리나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좀비기업이 정상 기업의 투자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봤다. 분석 결과 놀랍게도 국내 중소기업의 경우 좀비기업의 비율이 늘어날수록 정상기업의 투자율이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경쟁이 매우 치열한 시장에서 좀비기업이 증가해 제품의 시장가격이 하락하면 정상 기업도 자칫 언제든지 좀비기업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타산지석의 교훈이 시장에 적용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즉 좀비기업이 정상 기업들로 하여금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투자에 박차를 가하는 유인이 되는 셈이다. 그 결과 정상 기업들은 생산비용을 더욱 낮출 수 있는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시장에서 확실한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투자를 늘릴 수도 있다.

아직까지 좀비기업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 수치로만 좀비기업을 분류해 획일적이고 일방적으로 기업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구조조정에 앞서 이 기업들이 어떻게 좀비기업이 됐는지, 정부는 그동안 어떤 금융 지원을 해 왔는지, 지원이 더 필요한 기업과 당장 지원을 멈춰야 하는 기업이 있는지, 그 기준은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앞서 일본의 사례에서 기업에 속한 근로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우려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기업을 이윤을 만들어 내는 조직으로만 인식할 것이 아니라 기업에 속한 사람들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기도 하다. 기업 구조조정은 좀비기업에 대한 정의부터 명확히 한 후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015-11-0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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