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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마중 나선 길… 얼굴이 붉어지다

‘임’ 마중 나선 길… 얼굴이 붉어지다

손원천 기자
손원천 기자
입력 2015-10-23 22:32
업데이트 2015-10-24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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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6·56번 국도 따라간 강원 단풍길

길은 대개 과정일 뿐 여행 자체는 아닙니다. 하지만 길 스스로 목적지가 되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특히 단풍철에 그렇습니다. 대중교통으로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단풍 절승지로 꼽히는 곳들은 거개가 산자락 깊숙이 숨어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곳은 자가용으로 돌아보는 것 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요즘 같은 단풍철엔 당연히 차들이 밀릴 겁니다. 그렇다고 자연이 벌이는 색채의 축제를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가을로 들어선 길들을 짚어 봤습니다. 44번, 46번, 56번 국도를 번갈아 타고 설악산, 한계령 등 강원의 단풍 명소들을 휘휘 돌아봤습니다. 그 길의 끝은 모두 바다입니다. 단풍 못지않게 고운 동해 바다의 별빛도 가슴 가득 담아 올 수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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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미시령 휴게소에서 굽어본 풍경. 설악의 산군들이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고 있다. 56번 지방도에서 벗어나 ‘미시령 옛길’로 접어들어야 이 같은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옛 미시령 휴게소에서 굽어본 풍경. 설악의 산군들이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고 있다. 56번 지방도에서 벗어나 ‘미시령 옛길’로 접어들어야 이 같은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① 옛 미시령 휴게소에서 굽어본 풍경. 설악의 산군들이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고 있다. 56번 지방도에서 벗어나 ‘미시령 옛길’로 접어들어야 이 같은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② 흰 수피의 자작나무들이 순백의 세상을 펼쳐 놓은 인제 원대리 ‘속삭이는 자작나무숲’. 11월부터는 입산이 통제된다.

③ 밤에 찾은 양양 낙산해변. 총총 뜬 별이 단풍만큼이나 곱다.

④ 단풍으로 이름난 화암사. 절집 앞은 수바위다.

길가 풍경은 철따라 달라진다. 세상에 둘도 없는 경승지를 지나는 길이라도 느낌이 각별해지는 때는 분명 있다. 그래서 저마다 가슴에 길 하나 둘 정도는 새겨 두게 마련이다. 언젠가 꼭 찾을 거라 기약하며 말이다. 44번 국도가 그렇다. 경기 양평에서 시작해 강원 홍천·인제 등을 거친 뒤, 한계령을 넘어 양양까지 이어지는 도로다. 특히 가을이면 붉게 물든 단풍으로 가슴 저린 풍경을 선사한다. 총길이는 얼추 137㎞. 마음먹고 달리면 4시간 안팎에 주파할 수 있지만, 풍경 보며 가자면 1박 2일로도 부족하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 출발할 경우 서울양양고속도로를 이용해 동홍천 나들목으로 나가는 게 일반적이다. 주말이면 차들로 몸살을 앓는 양평 구간을 우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속도로도 밀리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사정이 다소 나은 편이다. 동홍천 나들목을 나와 속초·인제 방면으로 우회전하면 곧 44번 국도다. 여기서 한계 삼거리까지 왕복 4차선 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다.

인제를 지나는 동안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꼭 들러야 한다. 새하얀 수피의 자작나무가 군락을 이룬 곳이다. 38선휴게소 지난 뒤 인제38대교 못미처 오른쪽으로 원대리 방면 이정표가 나온다. 작은 길이라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니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갈림길에서 원대리 자작나무숲까지는 8㎞쯤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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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수피의 자작나무들이 순백의 세상을 펼쳐 놓은 인제 원대리 ‘속삭이는 자작나무숲’. 11월부터는 입산이 통제된다.
흰 수피의 자작나무들이 순백의 세상을 펼쳐 놓은 인제 원대리 ‘속삭이는 자작나무숲’. 11월부터는 입산이 통제된다.
숲의 공식 명칭은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이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규모로 25㏊(약 7만 6000평) 산자락에 70여만 그루의 자작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숲 초입의 산림 감시초소가 들머리다. 예서 ‘속삭이는 자작나무숲’까지는 3.2㎞ 거리. 꼬박 1시간 30분 정도 발품을 팔아야 한다. 하지만 임도를 따라가는 길이 넓고 평탄해 그리 힘들 건 없다.

숲에 들면 동공이 확장되고 입은 떡 벌어진다. 수많은 자작나무들이 순백의 세상을 펼쳐 내고 있다. 나라 안 어디서든 쉬 보기 힘든 풍경이다. 한 줄기 바람이 숲 사이를 훑고 지날 때면 나뭇잎 부비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린다. 그래서 숲의 이름도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이다. 다시 44번 국도로 복귀해 한계교차로까지 내처 달리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은 속초·고성으로 나가는 46번 국도, 오른쪽은 한계령 지나 양양으로 가는 44번 국도다. 예서 한계령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나라 안에서 가장 유명한 단풍길이 시작된다. 내설악의 기암괴석과 현란한 빛깔의 단풍이 수채화처럼 어우러져 있다. ‘일반 국도’란 이름이 무색할 만큼 ‘특별한’ 풍경들이 쉼 없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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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찾은 양양 낙산해변. 총총 뜬 별이 단풍만큼이나 곱다.
밤에 찾은 양양 낙산해변. 총총 뜬 별이 단풍만큼이나 곱다.
이 길 중간쯤의 한계령 휴게소는 풍경 전망대다. 설악의 산군들과 그 너머 양양 일대가 한눈에 들어 온다. 가수 양희은이 노래 ‘한계령’을 통해 ‘잊어버리라, 내려가라’ 주문했지만 도저히 잊기 힘들고, 아무래도 내려가기 싫은 풍경들에 넋을 놓고 만다. 한계령 휴게소에서 양양 방면으로 가다 첫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필례약수 방향이다. 이쪽 단풍도 빼어나다. 외려 이 일대 풍경을 첫손 꼽는 현지인들도 많다. 단풍은 24일쯤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한계 교차로에서 미시령 옛길 쪽으로 방향을 잡아도 멋들어진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44번 국도가 기암괴석과 단풍의 앙상블이라면, 미시령 옛길은 설악의 우람한 암릉들과 마주할 수 있는 구간이다. 한계 교차로에서 좌회전, 46번 국도로 갈아탄 뒤, 다시 용대교차로에서 56번 지방도로를 바꿔 타고 가다 도적소 교차로에서 ‘미시령 옛길’ 이정표를 보고 빠져나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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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으로 이름난 화암사. 절집 앞은 수바위다.
단풍으로 이름난 화암사. 절집 앞은 수바위다.
오래전 미시령 옛길은 단풍철이면 밀려드는 차들로 몸살을 앓던 도로였다. 하지만 2006년 미시령 터널이 뚫리고 ‘7번 군도’란 이름으로 물러앉은 뒤엔 단풍철에도 썰렁한 곳으로 바뀌고 말았다. 쓸모를 잃고 버려졌다 해서 풍경마저 바뀌랴. 미시령의 굽이굽이 고갯길이 보여 주는 장쾌한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 길 끝자락에 예쁜 절집 화암사가 있다. 설악산 코앞에 있으면서도 열에 아홉은 모르고 지나친다는 숨은 단풍 명소다. 고성군 토성면의 강원도세계잼버리수련장 인근에 있다. 절집은 금강산 1만 2000봉의 남쪽 첫 봉우리라는 신선봉 아래 터를 잡았다. 개창 시기는 신라시대까지 올라가지만 가람 내 대부분의 전각들이 중창 등의 과정을 거치는 바람에 고색창연한 맛은 덜하다. 가을이면 절 뒤편 화암폭포에서 단풍이 빠른 속도로 퍼져 10월 하순이면 절을 완전히 끌어안는다.

미시령 옛길을 내려서면 델피노 골프장 왼쪽으로 화암사 이정표가 있다. 성인대, 수바위를 돌아오는 4㎞짜리 원점회귀 산행 코스가 인기다. 금강산 첫 봉우리에서 설악의 산군들을 바라보는 맛이 각별하다. 코스가 어렵지 않아 2시간 남짓이면 돌아볼 수 있다.

글 사진 속초·양양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지역번호 033)

→가는 길: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서울양양고속도로를 타고 동홍천 나들목으로 나가 속초·인제·신남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44번 국도를 따라가다 한계 교차로, 용대 교차로에서 각각 46번 국도와 56번 지방도로로 바꿔 타고 가면 미시령, 곧장 가면 한계령이다. 원대리 자작나무숲은 44번 국도에서 빠져나간다. 38 휴게소와 인제 38대교 사이 남전계곡 가는 길로 들어서면 된다. 11월부터는 겨울철 산불조심 기간이어서 입산이 통제된다. 정확한 통제 기간은 인제국유림관리소(460-8036)에서 확인할 수 있다. 56번 국도는 원래 동홍천 나들목에서 좌회전해 구성포 교차로에서 올라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단풍철엔 양양 쪽에서 수도권 쪽으로 되짚어 나오며 들르길 권한다. 그래야 이 일대를 원형으로 돌아보는 여정을 꾸릴 수 있다. 구룡령 옛길 산행은 대개 업 힐과 다운 힐 두 가지로 나뉜다. 갈천리 마을회관 쪽에서 정상을 향해 오르거나, 그 반대로 내려간다. 산행 시간은 2~3시간 정도 소요된다. 홍천 쪽 명개리에서 올라 양양 쪽으로 내려설 수도 있지만 전 구간을 종주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잘 곳:속초 쪽엔 델피노 골프 & 리조트(1588-4888), 한화리조트 설악(1588-2299) 등 유명 리조트들이 많다. 양양에선 낙산 해변 쪽에 깔끔한 숙소들이 많다. 바닷가 쪽의 이른바 ‘오션뷰’ 객실은 1만원 이상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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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의 별미 섭국밥
양양의 별미 섭국밥  
→맛집:속초 시내 여러 포구마다 횟집촌이 형성돼 있다. 장사항 횟집촌이 그중 호젓하다. 설악산 울산바위 인근 학사평 일대에 김영애할머니순두부(635-9520) 등 순두부집들이 몰려 있다. 양양에선 ‘섭’(홍합을 이르는 현지 표현)을 넣고 조리한 전골, 칼국수 등이 별미다. 수라상(671-5857)이 널리 알려졌다. 양양군청 인근에 있다.
2015-10-24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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