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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똥 묻은 어른, 겨 묻은 아이들/김재원 KBS 아나운서

[문화마당] 똥 묻은 어른, 겨 묻은 아이들/김재원 KBS 아나운서

입력 2015-10-21 18:20
업데이트 2015-10-21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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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을 맞아 언론은 약속이나 한 듯 같은 기사들을 쏟아냈다. 우리말, 한글 사랑의 반짝 특수다. 올해는 청소년 언어오염 기사가 유난히 많았다. 청소년들이 어른들은 모르는 말로 대화한다는 것이다. 청소년과 어른의 말이 다른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우리도 어렸을 때는 분명 어른들이 모르는 단어를 쓰려고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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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KBS 아나운서
김재원 KBS 아나운서

오염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더럽게 물듦, 또는 더럽게 물들게 함이라고 정의한다. 청소년 언어가 더럽다는 얘기다. 욕을 달고 살고, 단어를 줄여서 말하며, 생소한 외계어를 쓴다는 것이다. 물론 욕 달고 사는 아이들까지 편들 생각은 없지만 그들의 언어가 오염이라고 할 정도로 정말 더러울까? 대부분 부모는 내 아이는 그런 말을 안 쓰는데 다른 아이들 때문에 물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들 다 쓰는 그런 말을 전혀 안 쓰는 아이에게도 문제는 있다. 어쨌든 잘못의 원인은 찾아봐야 하는 것이 어른의 도리이고 언론의 책임이다.

애들은 왜 그렇게 됐을까? 아이들에게는 분출구가 없다. 대학에 어떻게든 들어가려면 죽은 듯이 공부해야 한다. 집에서는 부모가, 학교에서는 선생이 눈 번득이며 감시하는 터라 친구들과 놀 시간도 없다. 10분 관계, 아이들은 고작 쉬는 시간, 점심 먹고 잠깐, 학원에서 다른 학원으로 이동하는 10분이 놀 수 있는 최대치다. 그래서 아이들은 줄여서 말해야 한다. 감시하는 어른들이 못 알아듣도록 외계어를 써야 한다. 입시제도에 대한 분노는 욕밖에 안 나온다. 못하게 하는 것들만 넘치니까 사방이 막힌 아이들에게 뚫린 곳은 입뿐이다. 교육제도가 아이들의 입을 거칠고 바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프랑스 국민가수 장자크 골드만의 ‘일생동안’이라는 뮤직비디오는 청년과 기성세대가 편을 나눠 번갈아 노래하는 형식이다. 청년세대는 당신들은 자유와 평화와 일자리를 다 가졌다고 말하고, 기성세대는 그것은 노력으로 얻은 것이며 너희들은 게으르고 일도 안 한다고 말한다. 서로를 비난하고 상대에게서 원인을 찾는 이 뮤직비디오는 사회단체 후원을 위해 만들어진 의도와 달리 세대갈등을 그대로 드러냈다. 우리도 세대 간의 언어불통의 책임을 청소년에게 고스란히 떠넘기는 것은 아닐까? 청소년의 억울한 입장을 대변해 준 언론은 찾기 힘들었다.

도대체 어른들은 잘하고 있느냐 말이다. 애들 국사 책을 놓고 극과 극으로 갈라져 자기주장만 앞세우는 어른들에게 타협과 화합을 어찌 배우랴. 국정감사에서 피 감사대상을 몰아붙이는 국회의원들에게서 배려와 충고를 어찌 배울까. 인터넷에는 낯 뜨거운 사진과 기사, 광고가 넘쳐난다. 방송 자막에는 오자와 비문과 외국어가 흘러넘치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재미라는 명분하에 은어와 속어가 속출한다. 제발 드라마에서는 싸우지나 않고 죽이지나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어른들이 하는 일을 잘 몰랐다. 하지만 요즘 똥 묻은 어른들의 행태는 청소년들이 그대로 보고 있다. 말 그대로 더럽게 물든 오염이다.

물론 언어의 위생과 안전은 필요하다. 생각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언어는 건강해야 하고 폭력성과 상처를 생각하면 언어는 안전해야 한다. 이는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아이들에게 겨가 묻은 것은 똥 묻은 어른들 잘못이다. 어른들이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자. 어디 심심한 여론 조사기관이 있다면 어른이 잘못했을 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 본 청소년이 얼마나 되는지 조사해 주기 바란다.
2015-10-2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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