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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팔이 무너뜨린 가정… “조희팔 잡히는 것만이 희망”

조희팔이 무너뜨린 가정… “조희팔 잡히는 것만이 희망”

입력 2015-10-13 20:27
업데이트 2015-10-13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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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친구들 소개로 투자 시작했다가 그만…”

”좋은 재태크 사업이 하나 있는데 해보지 않을래? 커피자판기 임대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

인천시 서구에 사는 권명순(41)씨는 고모로부터 이 말을 처음 들었던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4조원대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에게 전 재산을 날리게 된 것이 모두 저 말을 들은 순간 시작됐기 때문이다. 마침 그날은 2007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13일 서울 구로구 개봉동 ‘바른가정경제실천을 위한 시민연대(바실련)’ 사무실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권씨는 “고모는 나보다 2년 먼저 투자를 했는데 2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돈이 들어왔다고 통장을 보여줬다”면서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세 살 난 딸이 있었던 권씨는 자식을 키우다 보면 앞으로 자녀 교육비도 많이 들 테니 좋은 사업이면 투자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우선 4천만원 정도를 투자했다.

신기하게도 매일 통장으로 돈이 들어왔다. 440만원을 들여 의료기기 한 대를 사서 임대하면 하루에 약 1만원 정도의 돈이 들어오는 식이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자 권씨가 투자한 곳의 직급자들이 권씨를 꼬드기기 시작했다.

”이제 더 투자를 안 받으려고 한다. 앞으로는 장기적으로 수익률을 줄여나갈 계획이다. 수익률 좋을 때 많이 넣어두는 게 좋다.”

권씨는 “정말 많은 사람이 투자하려고 기다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결국 조급증도 겹쳐 직장 생활을 하며 10년간 모은 돈에다가 퇴직금 중간정산 금액을 합치고, 집을 담보로 은행과 보험사에서 대출을 받고 마이너스 통장까지 동원해 2억2천만원을 더 부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권씨가 실제로 매일 통장에 돈이 ‘꽂히는’ 것을 본 것은 10개월에 불과했다. 조희팔이 2008년 10월 전 자산을 현금화해 도주했기 때문이다.

권씨는 “일이 터지니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대출금만 남았다”며 “당시 아내는 충격을 받아 실신하기까지 했다”고 기억을 털어놨다.

실성하다시피 했던 아내는 권씨에게 빨리 전화해보라고 다그쳤지만, 전화기는 수화음만 갈 뿐 받는 사람이 없었다.

곧바로 투자금을 넣은 센터에 달려갔더니 그곳에는 ‘비대위’가 꾸려져 있었다. 그들은 “지금 잠깐 세무조사 문제로 이렇게 된 것이고 곧 해결될 것”이라고 권씨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당시 비대위를 했던 사람들은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모두 센터의 ‘직급자’였고 조희팔과도 미리 교감이 있었던 터였다.

사건이 일어나자 무엇보다 당장 생활할 돈도 대출금을 갚을 길도 묘연했다. 월급은 매달 들어왔지만 모두 대출 이자를 갚는 데 쓰였다. 조희팔 도주 직후 아들도 태어나 식구도 한 명 더 늘어났다.

대출 상황 압박을 견디다 못해 결국 집을 팔았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 집값이 폭락하면서 또 1억원 가까이 손해를 봐야 했다.

권씨의 처지는 방이 셋이던 30평대 주택 소유주에서 방이 둘인 20평대 주택 세입자로 바뀌었다. 지금은 안방에서 네 식구가 같이 생활하고 건넌방에는 자녀들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으로 쓰고 있다.

권씨는 자녀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미안하기도 했을 것 같다는 질문에 “특히 둘째는 사건이 일어나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대해주지 못했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친구들이 좋은 옷을 사거나 좋은 휴대전화를 가진 것을 보면 자녀가 사달라고 하지만 사줄 수 없는 형편이라 마음이 아프다는 것이다.

권씨는 “처음에는 고모를 원망하기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그분도 피해자라는 것을 알고 마음을 풀게 됐다”면서도 “그렇지만 그래도 다시 뵙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말했다.

지금은 고모뿐 아니라 다른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거의 끊고 직장과 집, 바실련 사무실만 오가며 살고 있다.

다른 피해자인 이웅희(70)씨는 고향 후배가 ‘임대업’하는 센터 체험장에 가보자는 말을 듣고 따라갔다가 결국 5억여원을 날렸다.

이씨는 처음에는 미심쩍어서 투자하지 않았지만, 후배가 거래 통장에 입금되는 것을 보여주자 결국 넘어가고 말았다.

노후자금으로 모아둔 돈과 집 담보 대출금을 합해 5억원을 투자하고, 아내와 두 딸 내외도 각기 4천∼6천만원씩 총 1억4천만원을 부었다.

그러나 조희팔이 도주하면서 이 돈은 모두 허공으로 사라졌다.

돈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시집간 딸들과의 왕래가 줄었고 아내와 다투는 일도 많아졌다. 현재 30대 후반인 막내아들은 집안 사정으로 고생하다가 아직 장가도 들지 못하고 이씨 내외를 봉양하고 있다.

이씨는 “사위들 볼 낯이 없고 어딜 가든 부끄럽다. 내 소개로 투자한 사람도 거의 20명 가까이 된다”고 고개를 숙였다.

권씨와 이씨는 “진실이 규명되고 조희팔이 잡히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며 “조희팔이 잡히면 피해자들에게 피해 금액이 다시 골고루 나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과거에는 사실 검찰과 경찰이 수사 의지가 없지 않았나”라면서 “지금은 최측근인 강태용을 붙잡은 것으로 보아 조희팔도 곧 검거되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과거에는 언론이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자체적으로 인터넷신문도 만들어 운영했다”면서 “모쪼록 기사로 우리의 억울함을 잘 알려달라”고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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