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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용기자의 밀리터리 인사이드] 병사들 30년 된 모포 쓰는데 비축품이라 괜찮다는 국방부

[정현용기자의 밀리터리 인사이드] 병사들 30년 된 모포 쓰는데 비축품이라 괜찮다는 국방부

정현용 기자
정현용 기자
입력 2015-10-09 23:04
업데이트 2015-10-10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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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들의 열악한 병영 복지

밀리터리 인사이드는 최근 열악한 병사들의 봉급 문제를 지적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좀 더 이야기를 진전시켜 보기로 했습니다. 바로 장병 복지 개선입니다. 군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미국처럼 디지털 조준 장치가 달린 신형 총기나 보급하라”고 말씀하시는데요. 무기가 좋아야 전투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죠. 장병들의 스트레스 상당 부분이 병영 생활에서 나옵니다. 장병들의 사기를 높이려면 우선 전반적인 생활환경이 개선돼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분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장병들의 사기는 병영생활 환경에서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2011년 군은 디지털무늬 사계절 전투복을 개발했다고 발표했으나 여름에는 통기성이 떨어져 장병들 사이에서는 ‘땀복’이라고 불린다. 병사들이 전방 초소에서 북한군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장병들의 사기는 병영생활 환경에서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2011년 군은 디지털무늬 사계절 전투복을 개발했다고 발표했으나 여름에는 통기성이 떨어져 장병들 사이에서는 ‘땀복’이라고 불린다. 병사들이 전방 초소에서 북한군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휴식 시간에 족구를 즐기는 병사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휴식 시간에 족구를 즐기는 병사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하계 전투복 빨라야 2017년 보급… 6년 걸려

먼저 입는 문제를 보겠습니다. 2011년 군은 위장 효과를 강화하고 신축성이 뛰어나다는 ‘디지털 무늬 사계절 전투복’을 야심차게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기존 전투복보다 오히려 통기성이 떨어져 장병들 사이에서 ‘땀복’이라고 불리는 등 불만이 속출했습니다. 사계절용으로 만들어 소재가 두꺼워지면서 땀 배출이 제대로 안 됐기 때문이죠. 언론 비판까지 이어지자 군은 부랴부랴 여름철 전용 전투복을 새로 만들어 2013년 보급하게 됩니다. 하지만 임시방편이었죠. 당시 군 관계자는 “하계 전투복을 신소재로 개발해 보급하려면 시험 평가만 2~3년이 소요된다. 최단 기간에 장병에게 전투복을 보급하기 위해 기존 전투복 소재로 만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올해 군은 또다시 신형 군복을 개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번에도 언론에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나섰는데요. 사계절 군복 대신 여름과 겨울, 소재가 다른 군복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여름철에 좀 더 시원한 군복을 개발하는 것이 주요 목표입니다. 하계 전투복 개발 완료 시점으로 예상하는 시기는 내년 12월입니다. 예정대로라면 보급은 2017년 6월에 이뤄집니다. 기관을 선정하고 여름철 시험평가를 하려면 내년 여름이 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현재 계획으로만 있는 사업이지만 시원한 군복이 장병들의 손에 들어가기까지 무려 6년이 걸리게 된 겁니다. 돌고 돌아 6년. 21~24개월을 복무하는 장병들에겐 짧다고 할 수 없는 기간입니다. 이것이 우리 병사 복지의 현주소입니다.

방위사업청은 올 1월 말 많고 탈 많은 전투복 등 피복 물품 공급에 ‘수의계약’ 대신 ‘경쟁계약’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이겠지만 ‘이제는’이 아니라 ‘이제서야’ 도입했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 새로 개발하는 전투복도 국방부가 직접 정부 연구개발 예산 3억 8600만원을 투입해 관리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국방부 표현대로라면 “경쟁계약 품목을 정부 연구개발 예산을 투입해 국방부 주도로 품질 개선을 추진하는 최초의 사업”이랍니다. ‘최초’라고 하니 허탈하긴 해도 이번에 진행을 하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러나 여름철 무더위에 시달리는 장병들을 한 번이라도 생각한다면, 군에 아들을 둔 부모들의 마음을 떠올린다면 이번 계획은 무조건 차질 없이 진행하시길 바랍니다.

●장병들 건강 위해 온수 공급 확대 의견 많아

군에서 발표한 내년도 예산 자료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군은 여름철 병영에서 온수 공급을 주 4회에서 주 5회로 늘린다고 밝혔습니다. 과거에 군 생활을 하신 분들이라면 깜짝 놀랄 만한 얘기인데요. 여름에 ‘온수’가 나온다는 사실조차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여름철 온수 공급 정책이 도입된 시기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그 이전에는 “군인은 찬물 한 바가지 뒤집어쓰면 된다”며 냉수 목욕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물론 저도 과거에 군생활을 했기 때문에 여름철 온수를 제대로 구경해 보지 못했는데요. 군은 2011년부터 여름철 온수 공급 제도를 만들었고 2014년 주 2회, 올해 4회, 내년 5회로 공급 기간이 점진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가을에는 주 6회, 겨울에는 매일 나온다는 것이 군의 설명인데요. 병사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좋은 정책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몇 가지 더 제안할 부분이 있습니다. 온수 샤워가 가장 필요할 때는 역시 날씨가 추워질 때인데요. 지난해 모 방송사에서 훈련 나온 연예인 병사들이 온수 샤워하는 내용을 내보냈다가 많은 예비역들의 질타를 받았습니다. “누가 야외 훈련지에서 온수 목욕을 한다는 건가”, “현실성이 떨어진다”, “연예인 병사만 사람이냐”는 비난이 빗발쳤습니다. 알고 보니 모 부대에서 방송 촬영을 돕기 위해 온수 공급 장비를 지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부대 사정이 천차만별이고 온수 공급은 부대장의 권한입니다만, 추운 겨울 야외 훈련 시 온수를 제공할 필요성은 분명히 있습니다. 현재의 빠듯한 예산으로 온수를 1년 365일, 24시간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히려 예산 낭비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따라서 꼭 필요한 곳에 온수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데요. 장병들의 건강을 고려해 훈련지 온수 공급 제도를 마련하고, 일일 온수 사용 시간을 늘려 장병들이 좀 더 여유 있게 샤워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또 장병들의 개인 위생 강화 차원에서 샤워시설은 아니더라도 세면대의 온수 공급 시간을 대폭 확대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감기, 독감 등 각종 감염성 질환을 효과적으로 예방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군에서 세심한 부분에도 관심을 가져 주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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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지 30년이 넘었어도 국방부가 비축용품이라 문제가 없다는 모포에서 생활하고 있는 병사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만들어진 지 30년이 넘었어도 국방부가 비축용품이라 문제가 없다는 모포에서 생활하고 있는 병사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일부 병사들 자기 나이보다 오래된 모포 사용

최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손인춘 의원은 육군 32사단이 실시한 모포 제조 연도 전수조사 자료를 공개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전체 1만 1543장의 모포 중 432장은 1980년대, 1167장은 1990년대에 제조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현재 군 생활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 1990년대 중반 출생자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일부 병사들은 자신의 나이보다도 오래된 모포를 쓰고 있다는 얘기가 되는데요. 예비역 사이에서는 너무 일반적인 얘기라 놀랄 만한 것도 아니라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국방부의 궁색한 해명이 공분을 자아냈습니다. 국방부는 “1980~1990년대 제조된 모포는 전시를 대비해 저장해 놓은 것을 보급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 사용 기간에는 차이가 있고,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오래된 모포라도 비축용이라 실제 사용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낡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얘기인데요. 곧바로 예비역들의 실소와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모포 세탁률 점차 하락… 올 8월 69% 그쳐

더 황당한 상황은 낡은 모포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새누리당 정미경 의원이 육군 8군단을 표본으로 조사한 ‘모포 세탁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모포 세탁률은 계획 대비 69%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모포 세탁률은 2013년 89%에서 2014년 72%, 올해 8월 말에는 69%로 낮아졌죠. 국방부는 이에 대해 ”지난해부터 분기 1회 세탁하던 것을 2개월에 1회 세탁하는 것으로 규정을 강화하다보니 목표 대비 세탁률이 낮아진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리고 “현실적인 여건과 예산 부족으로 일선 부서에서도 많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면서 “우리 국민들도 이런 문제들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습니다. 모포는 평소 생활할 때도 덮고 자지만 야외훈련을 할 때도 사용하기 때문에 각종 먼지와 전염성 질환을 옮기는 진드기가 달라붙기 쉽습니다. 지난 1일은 국군의 날이었습니다. 거창한 행사도 좋지만 앞으로 병사들의 복지에도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주시길 바랍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2015-10-1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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