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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인간의 이동 기술을 보다

예술, 인간의 이동 기술을 보다

함혜리 기자
입력 2015-10-04 23:02
업데이트 2015-10-05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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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아티스트 최찬숙 대안공간 루프서 개인전 ‘약속의 땅’

먼 옛날 동부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인류의 조상은 대륙을 가로지르고, 바다를 건너 전 지구로 퍼져 나갔다.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이주(移住)는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상의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 때문에 무언가를 찾아 떠나고 있다. 기근이나 자연재해, 전쟁과 학살을 피해 고향을 떠나기도 하고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새로운 땅을 찾아간다. 이유야 어찌 됐든 자발적 이주를 하는 이들이 원하는 것은 딱 한 가지다. 보다 나은 삶. 하지만 현실은 너무 가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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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기술력을 자랑하는 아우토슈타트의 첨단시스템을 보여주는 영상물들. 지하층의 화려한 구조적 영상 이미지들은 인간의 이동기술이 정점을 찍는 것을 상징한다. 하지만 이 이미지들은 강렬한 조명을 받아 순차적으로 지워진다.
완벽한 기술력을 자랑하는 아우토슈타트의 첨단시스템을 보여주는 영상물들. 지하층의 화려한 구조적 영상 이미지들은 인간의 이동기술이 정점을 찍는 것을 상징한다. 하지만 이 이미지들은 강렬한 조명을 받아 순차적으로 지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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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기술력을 자랑하는 아우토슈타트의 첨단시스템을 보여주는 영상물들.
완벽한 기술력을 자랑하는 아우토슈타트의 첨단시스템을 보여주는 영상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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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기술력을 자랑하는 아우토슈타트의 첨단시스템을 보여주는 영상물들.
완벽한 기술력을 자랑하는 아우토슈타트의 첨단시스템을 보여주는 영상물들.
서울 홍익대 앞 대안공간 루프에서 열리고 있는 미디어 아티스트 최찬숙(39)의 개인전 ‘약속의 땅’은 이주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이뤄지며 많은 문제를 낳고 있는 상황에서 매우 의미 있게 다가온다. 영상물과 사운드, 인터랙티브 설치작업을 통해 작가는 오랜 시간 독일에서 지내며 겪은 이주자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현대인이 겪는 이주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지난 10여년간 독일 생활을 하면서 이주자로서의 삶과 독립적인 작업세계와 예술관을 가져야 하는 작가로서의 삶은 충돌의 연속이었다. 독일 사람들과는 다른 형태의 삶을 살면서 과연 물리적인 이동만으로 진정한 이주가 가능한지를 스스로 묻곤 했다”는 작가는 “이주의 개념을 ‘물리적 이주’와 ‘정신적 이주’의 두 가지 양상으로 나누고 둘 사이의 간극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질문을 던져 봤다”고 설명했다. 타지에서 삶을 향유하지만 각자 기존의 삶을 고수하는 경우 사는 곳만 옮겨 왔을 뿐 삶 자체는 떠나오기 전의 모습 그대로다. 물리적 이주를 하고 정신적 이주를 하지 않은 상태다. 반대로 물리적 이주는 진행하지 않은 채 스스로 내적인 변화를 시도하며 정신적 이주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복잡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도구로 작가가 선택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배기가스 조작 파문을 일으킨 자동차 제조회사 폭스바겐사의 공장투어 프로그램이다.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본사를 둔 폭스바겐사는 본사와 출고장을 하나의 거대한 테마파크로 조성했다. 자동차를 뜻하는 아우토(Auto)와 도시를 뜻하는 슈타트(Stadt)를 합쳐 ‘아우토슈타트’라 부르는 이곳에는 공장, 박물관, 고객센터, 출고장 등이 위치해 있다. 첨단기술의 메카를 방문한 고객은 회사의 역사를 체험하고 자신이 구매한 차량의 제조공정을 직접 볼 수도 있고, 색상선택과 같은 일정 부분에 참여한 뒤 공장에서 직접 차를 구매해 몰고 나올 수도 있다.

작가는 “거대한 테마파크는 인간 이동기술의 정점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이 자신들이 보유한 기술의 완벽함을 자랑하는데 마치 블랙코미디를 보는 것 같았다”며 “비판적인 시각이 많이 담겼지만 폭스바겐 배기가스 스캔들을 예상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최 작가 외에 건축가, 사운드 디자이너, 과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업해 만들어낸 전시는 다분히 실험적이어서 그 의도를 충분히 공감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물리적 이주와 정신적 이주의 충돌을 체험하도록 첨단이동기술의 상징인 아우토슈타트와 광유전학이라는 미래기술의 모습을 작업으로 풀어낸 전시는 매 시각 정각부터 20분 간격으로 진행된다. 15분 길이로 실제 아우토슈타트 투어가이드의 안내 멘트에 따라 각 코너에 비쳐지는 영상과 설치물들을 순차적으로 관람하도록 설계됐다. 아우토슈타트의 첨단시스템과 마케팅 전략, 보유기술의 목적과 효과 등에 대해 설명하는 투어가이드의 음성은 전시장 투어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욱 단호해지고, 그럴수록 혼란과 충돌의 골은 깊어진다. 지하층으로 내려가면 영상이미지들은 화려한 구조적 이미지로 변하고 강렬한 조명이 그 이미지들을 순차적으로 지워버린다. 그리고 남은 것은 빈 공간이다. 그렇게 찾아 헤매던 ‘약속의 땅’이 그런 모습일지도 모른다.

최찬숙 작가는 설치, 음향, 비디오, 회화, 사진, 드로잉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미디어 아티스트로 성곡미술관의 ‘2012 내일의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대안공간 루프가 주관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독일 알리안츠 문화재단과 라이프치히 사단법인 할레14가 지원하는 전시는 오는 18일까지 열린다. (02)3141-1377.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2015-10-05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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