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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석 경제산책] 노동개혁과 성과보상

[정병석 경제산책] 노동개혁과 성과보상

입력 2015-09-13 23:12
업데이트 2015-09-13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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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석 한양대 경제학부 석좌교수
정병석 한양대 경제학부 석좌교수
임금과 고용에서 성과에 따른 개인 간의 차이를 인정하느냐의 여부가 노동개혁 논의에서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고 성과가 계속 나쁜 근로자는 퇴출할 해고 기준을 마련하자는 문제다. 그러나 개인별 성과급 격차를 거부하는 노조에서는 기왕에 개인별로 지급된 성과급도 회수해 조합원들 간에 똑같이 나누는 것이 더 형평의 원리에 맞는다고 주장한다. 평준화 의식이 만연해 다 같이 못살면 불만이 적지만 누구는 잘살고 누구는 못사는 것은 수용하지 못한다는 사고가 지배하고 있다.

조선의 건국자들이 정부 시스템을 설계할 때 토대로 했던 ‘주례’라는 경전은 성과에 따른 보상, 신상필벌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주례는 주나라의 관직과 직무, 직급, 예법 등을 규정한 책인데 오랫동안 중국과 조선의 정부 조직과 운영의 바탕이 된 중요한 책이다.

국무총리 격인 ‘총재’는 한 해를 마치면 모든 관서에 지시해 수행한 사업에 대한 성과 결산서를 보고받고 그 서류들을 면밀히 검토해 잘한 자는 계속 그 직책을 맡게 하고 부족한 자는 내보내라고 규정하고 있다. 3년마다 모든 관리의 치적을 총결산해 견책할 것은 견책하고 포상할 것은 포상한다.

정부회계 결산에서는 비용 출납을 결산해 재물을 낭비하고 물품 사용에 대해 거짓 서류를 만든 자는 견책하거나 처벌한다. 반면에 재물을 풍족하게 늘린 자와 물품을 절약한 자는 포상한다.

신상필벌 원칙과 함께 관리의 보수도 성과에 따라 가감하고 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의 국립의료원 같은 관서에 근무하는 의사에 대한 성과 기준도 매우 세밀해 의사가 치료한 환자 10사람 중 10사람이 치료됐으면 최고의 보수, 10사람 중 1회 실수가 있으면 두 번째 등급의 보수, 10사람 중 4번 실수가 있으면 가장 낮은 보수를 지급하라는 식이다.

조선에서는 초기에 이런 원리가 통용되다가 당쟁이 심화되면서 이와 같은 합리적 보상과 신상필벌 원칙은 무너지고 정파와 정실이 성과를 압도하는 문화가 지배하게 된 것 같다. 그 결과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을 거두고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공정한 인센티브 제도가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누군가의 부의 증가는 존경이나 축하의 대상이 아니고 시기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폐쇄적이고 인센티브가 없는 사회, 자신의 노력을 통한 신분상승의 기회가 없는 사회에서는 정해진 파이의 분배에 집착하기 때문에 공평한지가 가장 중요한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고, 이를 둘러싸고 상호 반목하고 갈등을 빚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러시아 유머에 농부 이반이 이웃 농부 보리스를 시기하는데 그것은 보리스가 이반에게 없는 염소를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요정이 나타나 이반에게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자 이반은 요정에게 보리스의 염소를 죽게 해 달라고 한다. 하향 평준화된 사회주의 체제를 오래 겪으며 형성된 가난한 평등사회에 대한 풍자적 비판이라고 하겠다.

최근 친노조 성향의 프랑스 좌파 집권 여당인 사회당이 고용 유연성을 확대하는 노동법 전면 개정에 나섰다는 보도가 있었다. 프랑스 총리는 사회당 전당대회에서 “기업주와 근로자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어 그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기업에 더 많은 고용의 유연성을 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총리 발언의 핵심은 노동법을 간소화해 기업주와 근로자의 자율결정권을 확대하고, 근로계약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프랑스 노동법을 고치겠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도 높은 청년실업률과 늘어나는 비정규직 문제가 정규직을 위주로 한 경직된 노동법에서 기인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사회를 더 역동적으로 활성화하고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개개인이 더 열심히 일하게 하고 잘한 사람이 더 많은 보상을 받고 대우받을 수 있는 법 제도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평준화 선호와 남의 장점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를 바꾸도록 노사정 협의에서 이런 원칙이 합의되기를 기대한다.

2015-09-1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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