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 92주년, 세 번째 영화 찍는 재일동포 오충공 감독

“어린 시절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많은 차별을 받았습니다. 소학교 4학년 때 답답한 마음에 ‘왜 조선인은 차별을 받아야 하나’라는 작문을 썼다가 그 글을 본 선생님 소개로 열차로 30분이나 걸리는 조선인학교로 전학을 하게 됐어요.”

오충공 감독<br>연합뉴스
1923년 9월 일본 간토 지방에서 일어난 대지진을 기화로 일본인들이 한국인 수천명을 학살했다. 재일동포 오충공(60) 감독이 간토대학살을 주제로 세 번째 다큐멘터리 영화에 도전한다. 간토대학살 60주년인 1983년 첫 작품 ‘숨겨진 손톱 자국’과 3년 뒤 ‘불하된 조선인’을 선보인 데 이어 거의 30년 만이다.

민족 차별을 겪으며 자란 오 감독은 조선인 학교에 진학해 한국의 역사·문화 등을 배우며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됐다. 간토대학살을 영화로 만든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됐다.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며 입학한 요코하마방송영화전문학원(현 니혼영화대학)에서 졸업작품을 고민하던 오 감독에게 동급생들이 간토대학살 다큐멘터리를 만들자고 제안해 왔다. 당시에는 시간이 촉박해 영화로 만들지 못했지만, 지도교수는 “끝까지 해야 한다”며 격려했고, 오 감독은 ‘숨겨진 손톱자국’과 ‘불하된 조선인’을 연달아 선보였다.

이번 세 번째 작품은 재일사학자인 강덕상(82) 전 시가현립대 교수의 권유에서 비롯됐다. “스승으로 모시는 강 교수님께서 과거의 제 작품을 보시더니 ‘아직은 미완성’이라며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보라고 하셨어요. 잘 만들 수 있을지 자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내가 해야 되겠구나’라는 사명감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지난 30년간 새롭게 밝혀진 연구 결과를 반영하면서 우리나라에 있는 간토대학살 피해자 유족들에게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오 감독은 올해 경남 함안 출신 피해자인 강대흥씨의 유족을 만났다. 강씨는 한국에는 가묘(假墓)가, 일본에는 진짜 묘가 있는 것으로 확인돼 화제가 된 바 있다. 어머니가 강씨와 똑같은 ‘진주 강씨’라는 오 감독은 “일본에 있는 진짜 묘에 뿌리겠다”며 함안 강씨 가묘 주변의 흙을 한 줌 담아놓은 상태다.

간토대학살을 주제로 세 번째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심경은 어떠할까. 오 감독은 “간토대학살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지금 유족들은 모두 60대가 넘었습니다. 일부 유족은 저를 만난 뒤 세상을 떠나기도 했어요. 한국 정부가 이제라도 속히 간토대학살 관련 진상규명 특별법과 관련 위원회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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