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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섶에서] 건들 팔월/황수정 논설위원

[길섶에서] 건들 팔월/황수정 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15-08-19 23:44
업데이트 2015-08-19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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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 풀 냄새가 좋다. 공원 길을 돌다 걸음이 멎는다. 여름내 온갖 잡풀들이 제 마음대로 활개친 통에 잔디밭은 숫제 풀밭이다. 삐죽빼죽 우북한 풀밭이 매끈한 잔디밭으로 되돌아가는 시간이다. 벌집이라도 잘못 건드릴까 풀 깎는 이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작업복을 뒤집어썼다. 중무장에 땀 흘리는 수고를 못 본 척, 고막 따갑게 돌아가는 기계 소리도 괜찮은 척. 베어지며 퍼지는 풀물 냄새가 좋아 한참 섰다. 일찌감치 쓰러져 눕는 여름의 잔해들.

모기 입 비뚤어지고 초록 풀이 울고 돌아간다는 처서가 코앞이다. 여름이 떠날 채비를 하면 가을은 소리로 온다. 온 여름 푸지게 누린 매미가 시간이 없다, 발을 동동 구르며 운다. 어제오늘 다르게 꺼칠해지는 칠엽수 이파리를 붙들고 찢어발기듯 운다. 자리를 내줘야 하는 마음은 서럽다. 기세등등 귀뚜라미가 처서를 등에 업고 온다 했으니.

옛사람들 말은 하나 버릴 게 없다. 어정 칠월, 건들 팔월. 더위 핑계로 어정어정 건들건들 여름이 다 갔다.

“아주머니!” 등 뒤에서 불러세우는 말이 아직도 낯설어 도끼눈을 뜬다. 쏴 논 화살처럼 시간이 가고 있는 줄 잘 알면서, 뻔뻔한 심보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2015-08-2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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