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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사이트] 문 꽉 잠그는 英·佛… 갈 곳 잃은 난민 ‘칼레의 기적’은 없다

[글로벌 인사이트] 문 꽉 잠그는 英·佛… 갈 곳 잃은 난민 ‘칼레의 기적’은 없다

오상도 기자
입력 2015-08-17 17:52
업데이트 2015-08-18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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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간 풀리지 않는 칼레 난민 사태

인구 7만 5000여명에 불과한 프랑스 북서부의 작은 항구도시 칼레가 최근 난민 문제로 다시 전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영국과 도버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는 칼레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도시에는 부두노동자, 정원사, 난방기구 수리원 등으로 이뤄진 순수 아마추어 축구팀(4부 리그) ‘라싱 유니온FC 칼레’가 있었다. 조기 축구회 수준이던 팀은 2000년 3월 1, 2부 팀들을 잇따라 제물로 삼으며 82년 만에 프랑스컵 결승에 오르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결승에선 패했지만 사람들은 이를 ‘칼레의 기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당시 다양한 인종으로 이뤄진 FC칼레는 ‘공은 둥글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런데 이제 칼레에선 ‘지구는 둥글다’는 진리마저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다. 이곳의 난민 수용소가 ‘정글’로 불리면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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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땅거미가 짙게 깔린 프랑스 서북부 항구도시 칼레에서 한 남성 난민이 영국행 기차를 타기 위해 칼레역 펜스를 아찔하게 뛰어넘고 있다. 칼레 AP 연합뉴스
지난 5일 땅거미가 짙게 깔린 프랑스 서북부 항구도시 칼레에서 한 남성 난민이 영국행 기차를 타기 위해 칼레역 펜스를 아찔하게 뛰어넘고 있다.
칼레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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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레의 난민 문제가 처음 불거진 건 ‘칼레의 기적’과 비슷한 시기였다. 1999년 말 정세가 불안한 중동쪽 난민들이 이곳에 모여들자 첫 수용소가 들어섰다. 이후 망명을 요청하는 난민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혼란이 커졌다. 2002년 당시 프랑스 내무장관이던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반(反)이민정책을 내세워 수용소들을 해체했다. 쫓겨난 난민은 이때부터 칼레항 근처에 천막을 치고 하루하루의 힘겨운 삶을 이어갔다.

칼레는 영국과 가장 가까운 프랑스 땅이자, 영국으로 건너가는 관문이다. 요즘은 내전과 기아, 죽음의 위협을 벗어나 ‘브리티시 드림’을 꿈꾸며 몰려든 아프리카·아시아계 난민 3000여명으로 붐빈다. 수단·에리트레아·시리아·아프가니스탄 출신 등이 다수로, 지난해 9월부터 부쩍 많아졌다. 그런데 목숨을 걸고 이곳까지 닿은 사람은 출발자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들은 칼레에서 마지막 여행을 준비한다.

난민들이 해저터널에 진입하려고 시도하면서 터널 양쪽에선 극심한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발이 묶인 난민과 이들을 막으려는 경찰 간 충돌도 끊이지 않는다. 해법을 마련하자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여전히 결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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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뉴정글’로 불리는 프랑스 칼레의 도로변 난민촌에서 난민들이 가건물을 짓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대거 헐렸던 이곳 난민 주거지는 최근 난민들이 몰리면서 급증하고 있다.  칼레 AFP 연합뉴스
지난 12일 ‘뉴정글’로 불리는 프랑스 칼레의 도로변 난민촌에서 난민들이 가건물을 짓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대거 헐렸던 이곳 난민 주거지는 최근 난민들이 몰리면서 급증하고 있다.
칼레 AFP 연합뉴스
●메르켈 “난민이 그리스보다 더 큰 문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16일 “난민이 그리스보다 유럽연합(EU)에 더 큰 위기”라고 경고했다. EU 회원국이 난민을 분산 수용하는 ‘난민 쿼터제’ 도입이 논의되고 있으나 일부 국가가 거부하면서 이곳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지고 있다. EU가 프랑스에 난민 수용을 위한 자금 지원에 나서고, 사태 해결을 놓고 영국과 프랑스는 서로 비난하는 모습을 내비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불법 노동자들을 방치하는 영국의 책임이 크다”는 생각이다.

영국 정부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런던을 황금의 땅 ‘엘도라도’로 여기는 난민들을 향해 “우리의 거리라고 황금으로 포장돼 있는 건 아니다”면서 불편한 속내를 드러낸다. 영국에선 이미 반이민 정서가 정점에 이르렀다.

왜 난민들은 목숨을 걸고 영국행을 택할까. 불법 이민자들에게도 어느 정도 보장되는 인간다운 삶 덕분이다. 영국에선 난민이 망명을 신청할 경우 결혼한 성인에게 일주일에 72파운드(약 13만원)를 지급한다. 인도적 차원에서 주택과 건강보험도 지원한다. 또 미성년 자녀에게는 무료 교육과 차등적 지원금까지 주어진다.

확연한 차이는 일자리다. 영국의 실업률은 5% 안팎으로 프랑스의 절반 수준이다. 증빙 서류 없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널려 있다. 독립 통화권을 형성한 영국은 다른 EU 국가들과 달리 탄탄한 경제 기반을 갖고 있다. 아울러 영국으로 향하는 이민자의 다수는 과거 영국의 식민지 출신이다. 영어에 익숙하고 출신지별로 이민사회가 형성돼 있어 정착하기도 쉽다.

●인간답게 살 권리 갖춘 영국, ‘엘도라도’ 아니다

칼레에선 절박한 표정으로 철조망을 기어오르는 난민과 맞닥뜨리는 게 예삿일이 됐다. 항구로 향하는 지름길마다 ‘그들만의’ 출입구가 마련돼 있다. 영국행 화물차나 트럭, 열차 등에 몰래 몸을 숨기기 위해선 이 철조망을 넘어야 한다. 잠행에 성공하거나 목숨을 잃는 것, 둘 중 하나다. 단속에 걸려 쫓겨나면 운이 좋은 편이다. ‘불귀의 길’이지만 “인간다운 삶을 살겠다”는 난민 행렬은 줄지 않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올 들어 영국행 밀입국 시도가 4만건 가까이 있었다고 추정했다. 차에 치이고 질식해 매주 10명 이상 죽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구호단체들은 “이보다 훨씬 많이 목숨을 잃는다”고 주장했다.

영국 정부는 국경 통제 외에 이민법을 강화하는 등 두꺼운 벽을 쌓고 있다. 난민 심사에서 탈락하더라도 주당 36파운드(약 6만 7000원)씩 주던 1만명 규모의 바우처제는 조만간 폐지될 예정이다. 집주인이 방을 얻으려는 세입자에게 체류 자격을 의무적으로 확인하고 불법 이민자를 퇴거시키는 조치도 마련했다. 제임스 브로큰셔 영국 이민장관은 “우리가 만만한 나라가 아니란 걸 알리는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2015-08-18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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