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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아베의 선택, 일본의 선택/이석우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아베의 선택, 일본의 선택/이석우 도쿄 특파원

이석우 기자
입력 2015-08-14 17:56
업데이트 2015-08-1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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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8월은 패전과 죽은 자에 대한 기억으로 이어진다. 지난 6일 히로시마와 9일 나가사키에서는 각각 원폭 투하 70주년 위령제가 열렸고, 그날의 참담함과 절망감을 기억하면서 다시는 전쟁과 원폭 투하 같은 일은 없어야 된다는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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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우 도쿄 특파원
이석우 도쿄 특파원
그러나 태평양전쟁 등 여러 전쟁과 침략을 촉발한 가해자로서의 반성과 책임보다는 피해자로서의 희생과 수난이 강조되고 부각되고 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찾은 아베 신조 총리가 유일한 피폭 국가임을 강조하면서 유엔에서 새로운 핵무기 폐기 결의안을 제출하겠다고 말한 것도 피해자로서의 입장을 강조하는 측면이 강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의 과거사를 잘못 인식해 왔다”, “침략의 정의는 정해져 있지 않다”면서 수정주의 역사관을 전면에 등장시켰다. 그는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일본 과거사의 재인식”을 주장해 왔다. 이런 시각에서 “젊은이의 생각과 그들에 대한 교육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교과서를 뜯어고치려 했고, 교육재생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 과거사에 대한 반성보다는 피해를, 국제사회에서 책임보다는 권리 및 역할을 강조하는 쪽으로 국민 여론과 국민 교육을 움직이려 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집권 다음해인 2013년 4월 22일 국회에서 “(무라야마 담화를) 아베 내각이 그대로 계승하지 않겠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대내외적인 반발 속에서 아베는 “과거 담화를 전체로서 계승하겠다”면서도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인정하냐”는 질문에는 답변을 피해 왔다.

제국주의 시대에 세계 각지의 침략이 있었고, 그런 행위는 이제는 용납될 수 없다는 식의 언급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일본의 침략 행위에 대한 사과인지 구분하기 어렵고 모호하게 처리해 왔다.

그런 아베 총리에게서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가책이나 죄책감 같은 진정성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른 서구 열강도 다 그렇게 해 온 시대적 추세였는데 우리는 다만 힘이 없어졌을 뿐”이라는 식의 생각을 깔고 있는 탓이다. “사죄를 언제까지 해야 하냐”는 그동안의 그의 반문도 그의 생각을 보여 준다.

전후 70년을 맞아 올 초부터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부각되고 강조돼 왔지만, 일본과 일본인이 왜 그런 참혹한 피해를 입게 됐고 동아시아 전체가 왜 그런 전화에 휩싸이게 됐는지에 대해선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14일 발표된 전후 70주년 담화, 아베 담화는 지난 70년에 대한 아베 내각의 입장과 역사관이 반영된 담화란 점에서 관심이 컸다. 지난 12일 아베 자신의 표현대로 “지난 전쟁에 대한 반성과 전후의 행보, 앞으로 일본이 어떤 나라가 돼 갈지를 세계에 알리는 내용”이란 의미와 무게를 지닌다. ‘문명의 대전환기’라고 불리는 현시점에서 아베의 일본이 어떤 선택을 할지를 보여 주는 지표란 점에서도 그렇다.

100여년 전 국제 정세의 기로 속에서 일본의 위정자는 서양을 답습하는 근대화를 통해 물질적 부국강병과 군사주의를 추구했고, 힘의 대결을 좇다가 종국에는 파멸했다. 일본 국민을 참혹함과 비탄의 구렁텅이로 끌어넣었고, 동아시아 전체를 전화에 휩싸이게 했다.

군사주의와 힘의 대결을 추구했던 일본이 100년 전 근대화 성공 신화에서 벗어나 지역 공존과 평화 등 새로운 시대의 개척자가 됐으면 한다. 그 첫 발걸음으로 형식을 넘어선 담화의 진정성을 담아 내고 실천하려는 노력을 기대해 본다.

jun88@seoul.co.kr
2015-08-1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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