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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노동개혁과 정치 방정식/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론] 노동개혁과 정치 방정식/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입력 2015-08-09 18:02
업데이트 2015-08-1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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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례적이다. 최근 박근혜 정부가 4대 부문 개혁의 필요성을 천명하면서 하필이면 노동개혁을 1순위로 지목했다. 지금까지 외국의 사례를 봐도 노동개혁은 늘 후순위였다. 그것도 나라 경제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나서야 꺼내 드는 카드다. 더이상 어쩔 도리가 없을 때 비로소 ‘마지못해’ 꺼내 드는 대안이었다. 사실상 전 국민을 상대로 한 개혁인 만큼 정치인에게는 말 그대로 ‘기피대상 1호’다.

우리가 노동개혁의 모범적 사례로 꼽는 독일도 예외는 아니다. 2000년대 초반 독일은 ‘유럽의 늙은 병자’였다. 당시 독일의 재정적자율은 4%에 달했고, 실업률은 12%, 실업자 수는 500만명에 육박했다. 기업은 외국으로 나갈 궁리만 했고, 사람들은 실업급여 등 사회보장제도에만 기대려고 했다. 슈뢰더 정부는 2003년 ‘어젠다 2010’이라는 전후 최대 개혁정책을 단행했다.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와 ‘사회보장제도 개혁’이 그 핵심 내용이었다. 당장의 고통이 반가울 리 없는 민심은 요동쳤고, 노동계의 반발도 엄청났다. 슈뢰더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정권을 잃을 각오로 덤벼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슈뢰더는 자신의 예측대로 2005년 9월 조기총선에서 패했다. 정권은 메르켈에게로 넘어갔다.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독일의 변화는 가히 드라마틱했다. 유럽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홀로 빛났다. 이제는 ‘유럽의 독일’인지 ‘독일의 유럽’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 덕에 메르켈 총리는 3차례 연임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성과가 오로지 노동개혁 덕분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뼈아픈 노동개혁이 없었더라도 지금과 마찬가지였을까 묻는다면 분명 ‘노’(No)라고 말할 수 있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최근 메르켈 총리의 짧은 소회가 그 근거다. “슈뢰더, 고마웠소”.

독일 사례는 왜 정치인들이 ‘노동개혁’을 주저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노동개혁을 해야만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표를 잃을 각오로 노동개혁을 하겠다”는 여당 대표의 말이 자못 비장하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 국민들은 이미 1997년 IMF 경제 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있다. 당시 국민들은 스스로가 고통분담을 자처했었다. 개혁에 나선 이상 ‘표를 잃을 각오’를 해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올바른 개혁’이라면 당장의 고통 때문에 주저할 국민이 아니다. 결국 관건은 노동개혁의 ‘방향’과 ‘내용’이다.

무엇보다 이번 노동개혁은 오로지 ‘미래 청년 세대’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청년 실업률이 10.2%에 달한다고 한다. 전체 실업률(4.1%)의 2.5배에 달하는 수치다. 체감실업률은 무려 23%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비정규직 문제도 유독 청년세대에 집중되고 있다. 취업난과 물가상승 등으로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니, 여기에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 꿈과 희망마저 포기한다는 ‘칠포세대’니 하는 말을 그저 웃어넘길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청년고용 문제만큼은 억지를 부렸으면 한다. 경영 효율성만을 고집한다면 답이 없다. ‘기득권’에만 매달려도 답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복잡하고 고상한 경제이론도 일단 접어 두자. 일감이 생겨야 사람을 뽑는 게 순서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일단 뽑고 나서 일감을 새로 찾아나서는 방식이어야 한다. 어느 대기업이 경영권 분쟁으로 시끄러워지자 2018년까지 정규직 2만 4000명 채용계획을 발표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논리가 아니라 의지임이 분명해졌다.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들을 중심으로 한 노동계가 남 탓만 하며 자기 혁신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이번 노동개혁은 경영계와 노동계, 그리고 정부가 청년고용을 위해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분명히 답해 주어야 한다.

다만 방식은 세련되어야 한다. 노든 사든 기득권 지키기를 비난할 수는 없다. 비난해서도 안 된다. 권리를 온전하게 지켜주는 것이야말로 시장경제 질서의 기본 중 기본이다. 그들의 고충에 공감하면서 위로해주는 방식이어야 한다. 양보를 요구하면서 윽박지를 수는 없지 않은가. 어렵지 않다면 애당초 ‘개혁’이라 칭하지도 않았다. 끈기와 용기는 필수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인기가 아니다. 역사의 평가다. 언젠가 미래세대의 솔직한 소회가 이랬으면 한다. “생큐, 대한민국”.
2015-08-1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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