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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석의 경제산책] 신상필벌과 법치국가

[정병석의 경제산책] 신상필벌과 법치국가

입력 2015-08-02 17:56
업데이트 2015-08-02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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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필벌은 공로 있는 사람에게 상을 주고 잘못한 사람에게 벌을 주자는 원칙이다. 공과에 따른 상벌을 시행해 공정한 사회를 만들자는 데 반대할 사람이 있을까. 법치국가에서 법을 엄정하게 집행하자는 주장을 반대할 수 있을까.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런 기본적 질문에도 확신을 갖고 대답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정병석 한양대 경제학부 석좌교수
정병석 한양대 경제학부 석좌교수
불행히도 우리에게는 엄정한 법 집행이나 신상필벌을 경시하는 오랜 역사가 있다. 조선 성종 때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자 조정에서 금주령을 내렸는데 어떤 재상이 이를 어기고 술을 마셨다. 임사홍이 경연에서 재상도 법을 어겼으면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승지들이 “‘재상도 금령을 범한 자는 반드시 벌하여 용서함이 없어야 한다’고 말한 것은 바로 상앙(商?)의 정치와 같은 것이니, 어찌 유학자가 할 말입니까”라고 하면서 임사홍을 처벌하라고 반발했다. 훌륭한 정치가였던 성종 임금이 임사홍을 적극 보호함으로써 이 일은 무마됐다고 한다.

백성이 법을 어기면 엄벌에 처해야 되지만 재상이 어긴 것을 처벌하자고 하면 그 주장하는 사람을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올바른 논리인가. 성리학을 교조적으로 신봉하는 조선 사대부 관료들의 법치 인식은 편협하게 치우쳐 있었다.

신상필벌의 법 제도를 엄정하게 시행해 변방 국가에서 급속하게 강대국이 되고 천하통일을 이루어 낸 대표적인 사례가 진나라다. 500년 넘게 지속돼 왔던 춘추전국시대를 마감하며 통일을 이룩한 진나라는 법치행정과 신상필벌의 성공 사례다. 춘추전국시대는 공자, 맹자, 순자, 장자를 비롯한 제자백가가 활동하던 시대로 그야말로 다양한 경세이론과 특출한 사상가들이 넘쳐나던 시대였다. 상앙과 한비자가 대표하는 법가는 다른 사상가들, 특히 유학자들과는 달리 강력한 국가는 군주의 도덕성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신상필벌의 법 제도와 엄격한 시행으로 만들어진다고 역설했다. 그래서 성공 사례를 만들었으나 조선의 사대부 유학자들은 자신들의 주장과 다른 이론이나 사례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이단으로 매도했다.

신상필벌과 법치행정을 토대로 한 부국강병론도 마찬가지였다.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외적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강한 군사력을 유지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인데, 조선에서는 유학의 원리에 어긋난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부국강병‘을 검색하면 38건이 나온다. 주로 송나라 왕안석의 신법개혁이나 상앙의 법가와 연계해 왕도정치의 이념과는 맞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기술돼 있다. 태조에서 성종 때까지 10회가 언급되고 중종 때 10회, 그리고 선조 이후에는 18회가 나온다. 대표적인 사림파 개혁론자인 조광조는 부국강병을 인의에서 벗어난 패술이라고 매도한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법과 원칙이 잘 지켜진다고 보기 어렵다. 사회적 약자는 법을 어기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묵인해 주자는 동정론이 생기는 한편 관행화된 정치적 특별사면으로 재벌, 정치인 등 힘센 집단들은 온갖 편법을 동원해 적당히 법을 회피한다. 그러니 법의 권위가 없고 법치행정이 되지 않는 것이다. 나라가 발전하려면 무엇보다도 법의 권위를 세우고 신상필벌의 문화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능력과 실적에 의거하지 않고 지역이나 집단 간 적당히 안배해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나누는 것은 잘하려는 의욕을 저해하고 잘하는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는 후진적인 문화다.

잘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고 잘못하는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은 경제활동을 촉진하는 명확한 인센티브 제도인데 법치도 제대로 못하고, 신상필벌도 확립되지 않고 어찌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성과급이란 업무성과를 측정해 성과를 많이 낸 근로자에게는 많은 임금이나 상여금을 주고, 성과가 적은 근로자에게는 적게 주자는 것이다. 성과에 따라 임금을 주자는데 왜 우리나라 노조는 반대할까. 우리가 직면한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별한 대책을 모색하기 이전에 기본으로 돌아가 반드시 해야 할 원칙부터 제대로 지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2015-08-03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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