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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중산층 2~3배 비싸도 유기농 먹을거리 주저 없이 산다

美 중산층 2~3배 비싸도 유기농 먹을거리 주저 없이 산다

이현정 기자
이현정 기자
입력 2015-08-03 00:10
업데이트 2015-08-03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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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변형식품 종주국 미국서 부는 ‘Non GMO’ 바람

지난해 국내에 수입 승인된 유전자변형식품(GMO) 규모가 사료용과 식용을 포함해 처음으로 1000만t을 넘었다. 2013년에 비해 22% 늘었다. 이렇게 수입된 유전자변형(GM) 작물은 전분, 과당, 식용유로 탈바꿈해 우리 식탁에 오른다. GMO 안전성 논란은 끊임없지만 소비자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 소비자단체의 노력에도 GMO표시제 강화는 수년째 제자리다. 반면 미국에선 GMO가 아닌 자연 식품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는 등 변화를 실감케 한다. 세계 GMO 개발, 재배를 주도하는 나라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지난달 20일부터 일주일간 몬산토와 듀폰 등 미국 GMO기업을 찾아 GMO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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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디모인의 ‘홀푸드마켓’에 GMO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의미의 ‘Non GMO’가 표시된 과자(왼쪽)와 전통적인 방식으로 재배한 작물이라는 의미의 ‘Conventional’이라고 표시된 토마토가 진열돼 있다.
미국 디모인의 ‘홀푸드마켓’에 GMO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의미의 ‘Non GMO’가 표시된 과자(왼쪽)와 전통적인 방식으로 재배한 작물이라는 의미의 ‘Conventional’이라고 표시된 토마토가 진열돼 있다.
장을 보러 온 사람들로 100평 웃도는 매장이 북적였다. 토마토 3.99달러, 라즈베리가 2.5달러로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GMO 식품보다 1.5배 이상 비싸지만 고객들은 망설이지 않고 장바구니에 담았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인근의 ‘홀푸드마켓’으로, 유기농(Organic)과 전통적인 방식으로 재배한 작물(Conventional)만을 판매하는 곳이다. 지난달 22일 이곳을 찾았을 땐 아이 손을 잡고 온 엄마가 특히 많았다. 가격은 높아도 가족에게 건강한 먹을거리를 먹이려는 미국 중산층이 홀푸드마켓을 찾는다.

매장에서 판매되는 모든 식품 포장에는 유전자 변형 식품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의미의 ‘Non GMO’ 표기가 있었다. 과일이나 옥수수 등의 작물은 물론 가공식품인 과자, 버터, 소시지 등의 포장지에서도 어김없이 그런 표기를 찾을 수 있었다. 1980년 설립 당시만 해도 홀푸드마켓은 미국 전역에 6곳 정도였지만 이제 북미와 영국에 300여개 매장을 꾸린 유기농 식품 전문 업체로 성장했다. 비싸도 산다는 것 자체가 GMO에 대한 인식이 변화됐음을 보여준다.

미국 지방정부에서도 최근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버몬트주는 지난해 5월 수개월에 걸친 여론조사 결과와 소비자의 의견을 반영해 미국 최초로 GMO표기법을 통과시켰다. 최종 생산품에 GMO가 들어가지 않은 식품에는 ‘Non GMO’ 표기를, 생산 전 과정에 GMO가 들어가지 않은 식품에는 ‘organic’이라고 표시하는 식이다. 현재 미국은 GMO 표기를 업체 자율에 맡기고 있다. 미국 농무부 관계자는 “미국 소비자들에겐 GMO든 Non GMO든 유기농이든 여러 식품을 소비할 길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버몬트를 포함해 현재 3개 주에서 GMO표시제가 통과됐고 20여개 주에서도 논의 중이다. 그러나 식품 대기업의 로비로 법 시행 여부는 불투명하다. 이 관계자는 “버몬트는 법적 소송에 휘말렸고, 1개 주는 표시제를 아직 시행하지 않고 있으며 다른 주는 관망하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식품업계와 농업회사의 저항이 거세지만 종주국인 미국에서마저 GMO가 설 자리는 좁아지고 있다.

GMO 수입국인 우리나라는 GMO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GMO 규제가 가장 까다로운 유럽연합(EU)은 가공 후 유전자 변형 DNA가 남지 않은 식품에 대해서도 GMO 표시를 의무화했다. 콩기름처럼 가공 과정에서 유전자 변형 단백질이 걸러져 최종 생산품에서 유전자 변형 물질이 검출되지 않은 제품에도 표시한다. 생산과 유통 전 과정을 추적하는 ‘이력추적제’로 GMO 혼입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GM 작물이 식품에 가장 많이 쓰인 원재료 5순위에 들지 않으면 표시를 면제한다. 다만 올해 하반기부터는 제도를 바꿔 6순위 이하의 원재료까지 모두 공개하도록 할 방침이다. 소비자단체는 GMO를 원료로 사용한 모든 식품에 표시를 의무화하라고 요구한다. 정부는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유럽과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다고 항변한다. 우리나라는 2012년 기준 주요 GM 작물인 대두와 옥수수의 자급률이 각각 10.3%, 0.9%에 불과해 수입하지 않고서는 물량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GMO 표시를 의무화할 경우 식품기업이 GM 작물 대신 ‘Non GMO’를 사용하게 돼 식품 가격이 상승하고, GMO 표시가 된 가공품을 수출할 때 우리 기업이 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지금은 모두 똑같이 GMO를 먹지만 표시제가 도입되면 가난한 사람은 GMO를, 중산층 소비자는 Non GMO를 먹는 소비의 빈부 격차가 올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지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소비자정의센터 간사는 “GMO 표시가 소비자 물가 상승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미국 소비자단체의 조사 결과도 있다”며 “업체의 입장보다는 소비자의 알 권리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글 사진 세인트루이스·워싱턴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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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변형식품(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1970년대 중반에 꽃핀 유전자재조합 기술 등 현대생명공학기술을 활용해 재배·육성한 농축수산물과 이를 이용해 제조·가공한 식품 또는 식품첨가물로 1996년부터 상업화되기 시작했다. 주요 재배국은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인도, 캐나다 등이며 세계 재배 면적의 약 90%를 차지하고 있다.
2015-08-03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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