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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퇴직연금은 어떻게 노후 황금우산이 되었나

호주 퇴직연금은 어떻게 노후 황금우산이 되었나

전경하 기자
전경하 기자
입력 2015-07-05 17:46
업데이트 2015-07-06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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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자 천국’ 호주의 퇴직연금 4대 비결

요즘 모든 금융사들은 성장동력으로 퇴직연금을 꼽는다. 회사가 일정 비용을 내고 근로자가 운용책임을 지는 확정기여(DC)형이나 개인이 추가로 가입하는 개인형퇴직연금(IRP)이 앞으로 퇴직연금의 주력 상품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금융사의 경쟁이 심화되다 보니 주요 결정이 미래의 퇴직자이자 수요자인 근로자 중심이 아니라 사업자 중심으로 결정되는 경향이 강하다. 퇴직연금의 강자로 자타가 인정하는 호주의 상황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호주는 어떻게 퇴직연금을 운용했길래 은퇴자의 천국이 됐을까. 우리에게는 없는 네 가지가 있다.

‘은퇴자 천국’으로 평가받는 호주 시드니에서 시민들이 한가로운 일상을 즐기고 있다. 시드니수산시장 제공
‘은퇴자 천국’으로 평가받는 호주 시드니에서 시민들이 한가로운 일상을 즐기고 있다.
시드니수산시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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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율 무조건 15% 적용… 파격 세제 혜택

호주의 소득세는 15%, 30%, 37%, 45%다. 근로자가 퇴직연금에 넣은 돈에 대해서는 15%의 세율이 적용된다. 호주의 퇴직연금 제도하에서 회사는 근로자 봉급의 9%에 해당하는 기여금을 낸다. 그리고 근로자가 개별적으로 내는 돈을 더해 연간 2만 5000호주달러(약 2100만원)까지가 납입 한도다.

예를 들어 연봉이 10만 호주달러인 근로자라면 회사의 기여분이 9000달러다. 본인이 더 낼 수 있는 돈은 1만 6000호주달러다. 이 근로자의 소득세율은 37%이지만 이를 퇴직연금에 넣으면 15%의 세율이 적용된다. 1만 6000호주달러에 대한 세금이 5920호주달러에서 3520호주달러(약 303만원) 줄어든 2400호주달러가 되는 것이다. 소득세율이 45%에 해당하는 근로자라면 절세 효과가 더 커진다.

우리나라는 연간 700만원 한도로 16.5%(연간 소득 5500만원 초과는 13.2%)의 세액공제에 그친다. 세금혜택이 근로소득세율과 상관없이 최고 115만 5000원이다.

연금을 받을 때 세제 혜택도 호주가 더 크다. 60세 이후 받으면 운용수익에 대해 비과세다. 우리는 55세 이후부터 받을 수는 있지만 운용수익에 대한 세율이 69세까지 5.5%다. 70대가 4.4%, 80세 이상이 3.3%를 떼고 받는다. 양국 모두 연금 요건을 충족하지 않은 중도 인출에 대해서는 높은 세율을 매긴다.

●‘건전성감독청·증권투자위’ 쌍봉형 감독

우리나라의 퇴직연금은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에 따른 것이다. 이 법의 소관 부처는 고용노동부다. 반면 퇴직연금을 어떻게 운용하는가는 금융위원회가 세부 규정을 담당한다. 세부 규정에서 두 부처의 의견이 달라 퇴직연금 운용 사업자인 금융사가 두 부처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IRP와 개인연금의 상호 이동, 퇴직연금 담보대출 등이 두 부처 간에 의견이 충돌하는 분야다. 금융업권에서는 고용노동부의 입장이 정책에 반영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금융위는 관련 법에 따라 금융회사에 대한 검사·감독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금융감독원을 설립하고 금감원을 지도·감독하게 돼 있다. 그러나 금융위와 금감원의 관계, 금융사가 두 기관과 맺는 관계 등이 해당 법의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또 금융감독 당국은 퇴직연금시장을 키우면서도 사업자가 고객 보호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감독해야 한다. 우리나라 감독 당국이 가진 딜레마다. 그래서 이번 정권은 대선 공약으로 금융소비자보호원 출범을 내걸었다. 관련 법이 국회에 제출돼 있지만 금융위원회도 분리해야 한다는 야당과 일부 전문가들의 반발로 금융소비자보호원의 출범은 사실상 무산됐다는 평가다.

호주에서는 퇴직연금의 안전성과 건전성은 호주건전성감독청(APRA)이 담당한다. 가입자 보호는 호주증권투자위원회(ASIC)의 업무다. 두 기관의 업무가 나눠져 있지만 행여 의견 충돌이 있을 때는 재무부 산하 금융감독협의회에서 의견을 조율한다. APRA와 ASIC 모두 재무부 산하기관이다. 이런 쌍봉형 감독체계를 도입하는 것이 금융소비자보호원의 도입 목표 중 하나였다.

●이해관계 안 따지고 운용사 고를 수 있어

회사가 근로자 퇴직금을 정해 놓고 운용책임도 지는 확정급여(DB)형에 가입할 경우 운용사는 회사와 자금 관계가 있는 금융사가 될 공산이 크다. 특히 대출이 많은 회사일수록 더욱 그렇다. 또 DC형이나 IRP를 골라도 세부 투자 항목에 대해서는 해당 금융사가 자기 회사의 퇴직연금 홈페지에 걸어둔 상품에 대해서만 투자가 가능하다. 퇴직연금에 대한 경쟁이 심화되면서 경쟁 상대방의 퇴직연금 상품을 가입 대상 상품에 포함시키지 않거나 한참 뒤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많다. 근로자가 책임지는 DC형이라고 하더라도 금융사가 회사와 연계해 가입 캠페인을 열기도 한다. 물론 금융사 또한 회사와 대출 등으로 관련이 있다.

호주는 사업자와 금융사가 계약하는 형태가 아니고 사업자나 근로자가 기금을 선택하는 구조다. 근로자가 근무하는 회사나 산업 분야에서 설립한 기금에 가입하면 된다. 물론 다른 분야의 기금 일부에도 가입할 수 있다. 근로자가 기금을 고르지 않으면 근무하는 회사가 정한 기금에 자동 가입하게 된다. 기금의 운용 방식도 본인이 고르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기금에서 정한 방식으로 운용하게 된다. 금융투자협회 측은 2005년 7월 도입된 이 제도가 퇴직연금시장의 경쟁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퇴직연금시장의 발전은 호주 자산운용사의 경쟁력을 높였다.

●공공부문 근로자 공적기금제도 활성화

우리나라의 퇴직연금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에 대한 연금이다. 그런데 공무원은 근로기준법의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공무원은 퇴직연금에 가입할 수 없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3층 연금구조(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를 통해 노후 생활 보장을 요구하지만 공무원에게는 공무원연금과 개인연금의 2층 연금구조만 허용하는 상황이다. 하나의 틀에서 노후 자금인 연금 전체를 논의하는 게 아니라 집단별로 논의를 해야 하는 비효율적 구조인 것이다.

호주의 공공부문 근로자는 퇴직연금의 한 종류인 공적기금에 가입해 있다. 연방공공서비스기금, 퀸즐랜드주 공무원기금, 교수 및 대학교 근로자기금이 이에 해당한다.

공무원이 퇴직연금 가입 대상은 아니지만 큰 틀은 물론 세세한 규정을 공무원들이 결정한다. 정부 부처의 세종시 이전 당시 행정안전부가 이전 대상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세세한 부분을 놓친 것처럼 퇴직연금에도 그런 측면이 있다는 것이 금융투자업계의 판단이다.

호주는 2007년부터 자영업자도 퇴직연금 대상에 포함시켰다. 우리나라는 2017년으로 예정돼 있다. 퇴직연금이 아직은 상대적으로 노후소득 보장이 쉬운 대기업 근로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2015-07-0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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