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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순경 특채에 몰린 까닭은

[단독]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순경 특채에 몰린 까닭은

입력 2015-06-02 19:06
업데이트 2015-06-02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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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인생 승부 띄운 메달리스트

아시안게임 유도 동메달리스트 A(28·여)씨는 요즘 면접 준비에 한창이다. 무도 종목 순경 특채에 지원해 오는 5일 최종 면접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16년 동안 유도를 해 온 A씨는 세계선수권을 비롯해 각종 국제대회 메달을 휩쓴 엘리트 체육인이다. 오랫동안 무릎 부상에 시달려 온 A씨는 2012년 런던올림픽을 끝으로 은퇴를 결심했지만 막상 유도를 그만두려니 갈 곳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실업팀에 몸을 담은 채 어렵게 중학교 코치 자리를 구했지만 월급 180만원에 1년 계약직이었다. A씨는 이번 특채가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라며 “반드시 합격하고 싶다”고 말했다.

11년 만에 실시된 ‘무도 종목 순경 특채’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포함해 유명 선수들이 대거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받고 있다.

2일 경찰청에 따르면 모두 50명을 선발하는 이번 순경 특채에는 태권도, 유도, 검도 종목 메달리스트 492명이 지원해 10대1에 가까운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 중 111명이 서류와 실기 전형을 통과해 4, 5일 최종면접을 치른다. 최종합격자는 다음주에 발표된다.

지원자 중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B씨,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C씨, 도하·광저우아시안게임 2연패를 한 D씨 등도 지원했다. 심지어 현직 실업팀 코치 등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순경 특채에 이렇게 많은 메달리스트가 몰린 것은 은퇴 이후 삶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유도 국가대표였던 E(41)씨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도 무도 종목 선수들은 은퇴 후 중·고등학교나 실업팀 코치밖에 갈 곳이 없는 게 현실”이라면서 “그나마 코치 자리도 90% 이상이 단기 계약직이라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당장 그만둬야 한다”며 “코치라도 평생 할 수 있다면 이렇게까지 경찰 시험에 몰리겠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성들의 불안감은 더하다. 순경 특채에 응시한 전 아시안게임 은메달리스트 C(26·여)씨는 “코치를 구하는 팀들도 남자를 훨씬 선호한다”며 “어렵게 중·고교 코치직을 구한다고 해도 학부모들이 여자 코치를 무시하고 남자 감독하고만 상대하는 등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말했다.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대학 교수는 “여자 선수에게 은퇴란 곧 사회 빈곤층으로의 추락을 의미한다”며 “국내 프로 종목의 여자팀 코칭스태프도 여자는 4~5명밖에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때문에 은퇴 후 대형마트 일용직 등을 전전하는 이도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선수들의 복지를 책임져야 할 대한체육회, 문화체육관광부 같은 조직이 메달을 따는 것에만 관심 있을 뿐 선수들의 ‘삶’ 자체에는 관심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정 교수는 “승부조작 같은 문제도 결국 비정규직인 감독, 코치들이 계약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벌이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엘리트 체육인’들의 불안한 미래는 지속될 수밖에 없는 만큼 이들에 대한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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