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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국회가 행정입법을 통제해야 삼권분립이다/문소영 논설위원

[서울광장] 국회가 행정입법을 통제해야 삼권분립이다/문소영 논설위원

입력 2015-06-02 23:38
업데이트 2015-06-03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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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 논설위원
문소영 논설위원
2004년 가을 열린우리당의 전략·기획위원장을 맡은 민병두 의원은 국회의 입법권을 정상화할 방안을 모색했다. 헌법 제40조에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는 조항에도 국회는 행정부에 입법을 위임해 왔다. 그 오래된 관행을 바꾸자는 의도였다. 한국에서 국회를 통과하는 법안은 A4 용지로 최대 50쪽 안팎에 불과한 앙상하게 뼈대만 추린 ‘골격입법’이다. 때문에 실제 국민에게 영향을 주는 요소들은 국회가 아닌 정부가 제정한 시행령으로 규정하고 있다. 예로 대부업법은 대출이자율의 상한을 여야가 국회에서 심사해 정하지 않고, 대통령령으로 정했다. 1988년 헌법재판소가 구성되고 나서 정부의 시행령 등에 대해 위헌 결정들이 적잖게 나왔으니 국회는 입법권을 정상화할 현실적인 필요성이 제기됐다.

국회가 입법권을 위임해 정부가 대통령령이나 총리령·부령 등을 제·개정하는 것이 이른바 ‘행정입법’이다. 정부가 독자적으로 입법의 권리를 가진 것이 아니라, 국회로부터 위임된 권한으로 만드는 ‘위임입법’이다. 행정입법의 근거도 헌법에 있다. 헌법 제75조는 “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을 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는 데 필요한 사항에 대해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고 했고, 헌법 제95조에서 총리령이나 부령을 발할 수 있다고 했다. 헌법 제75조와 제95조를 근거로 행정입법을 행정부의 고유한 권리처럼 착각할 수 있지만, 헌법 제75조는 명확하게 행정입법이 국회로부터 위임받았음을 밝혔고, 또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을 받은 사항’이라는 조건도 규정했다. 즉 국회가 만든 법률이 상위법이고, 그 상위법이 위임한 ‘구체적 범위’에 대해 그 상위법에 충돌하지 않는 시행령을 정부가 만들어야 한다. 또한 헌재의 위헌 결정문들을 분석해 보면 헌재는 행정부의 ‘포괄적인 위임입법’을 금지한다.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통제는 2000년 2월 개정된 국회법 제98조 2에 들어 있다. 이번에 국회에서 이 조항을 개정해 국회의 통제를 강화하자 박근혜 대통령이 ‘삼권분립 위배’이자 ‘위헌’이라고 주장한 항목이다. 2000년 당시에 행정입법의 제정·개정 등에 대해 국회의 소관 상임위원회에 제출해 법률위반 여부를 검토한 뒤 해당 부처의 장관 등에게 통보하는 등으로 정부의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 통제의 실효성을 높이는 장치를 마련했다. 그러나 2004년 학계 연구에서 국회에 제출해 검토를 요청한 행정입법이 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최근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역시 국회 검토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져 논란이 일었는데, 이처럼 행정입법은 국회의 통제를 벗어나는 일이 잦았다. 국회법 제98조 2의 1항과 3항은 2005년 재개정해 ‘해당 부처의 장관은 지적에 대한 처리 결과나 계획을 지체없이 국회 소관 상임위에 보고하도록’ 하는 대목을 추가했다.

11년 전 민 의원의 입법권 정상화 시도는 어떻게 됐을까. 당시 국회와 정부는 국회의 입법권 정상화와 강화를 위해 2003년 국회예산처를, 2007년 국회입법조사처를 신설해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을 지원했으나 국회의원의 입법 능력이 크게 개선된 증거는 찾기 어렵다. 그 시도가 잘 해결됐다면 ‘위헌으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운운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가 복잡해지고 정보가 전문화해 행정입법의 수요 증가가 불가피하더라도 의회주의, 권력분립 등은 지켜져야 한다. 행정부가 국회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는 이유로 시행령에 특정 조항을 살짝 집어넣어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거나, 모법의 취지를 훼손하는 행정입법을 일삼아서는 안 된다. 학교 옆에 관광호텔을 짓지 못하는 법안을 피해 교육부 장관 훈령으로 학교 옆 호텔 건립을 가능하게 한다든지, 5·18희생자보상법에서 신청 기간을 2015년 5월로 했는데 시행령에서 2006년 12월로 축소한다든지, 누리과정 정부 지원과 관련해 법령에는 없는데 시행령에 어린이집을 보육기관에 포함시키고 누리과정 예산을 의무 편성하게 한다든지 하는 일이 그것이다.

최근의 국회법 개정 위헌 논란이 한심하다. 내년 총선에서 새로 금배지를 단 유능한 국회의원들은 ‘골격입법’을 뛰어넘는 제대로 된 입법으로 국민 주권주의를 제대로 실현하길 바란다.

symun@seoul.co.kr
2015-06-0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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