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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사법시험 존치, 이제 국회가 나서라/오일만 논설위원

[서울광장] 사법시험 존치, 이제 국회가 나서라/오일만 논설위원

입력 2015-05-29 23:40
업데이트 2015-05-30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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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만 논설위원
오일만 논설위원
2년 후인 2017년 사법시험이 마지막이다. 2018년부터는 현행법에 따라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에서 양성된 법조 인력이 변호사는 물론 판검사까지 모두 대체하게 된다. 2007년 7월 당시 노무현 정부는 야당인 한나라당이 추진한 사학법 재개정안과 로스쿨 법안을 빅딜 형식으로 전격 처리했다. 부작용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졸속 처리한 만큼 로스쿨 제도는 시행 7년째를 맞았지만 곳곳에서 폐지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로스쿨 폐지 여론이 단순한 시행착오에서 빚어진 사안이라면 얼키설키 고쳐서라도 끌고 갈 수 있지만 법치 국가의 핵심 요소인 ‘공정성’이란 뇌관을 건드리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R&R)가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로스쿨 제도가 ‘기회의 균등’에 어긋난다는 답변이 60.3%이고, 응답자의 87.8%가 ‘로스쿨 졸업자의 취업 시 실력 외에 집안 배경 등의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고 답변했다. 로스쿨 입학에서 졸업, 변호사 채용 절차까지 모든 과정에서 ‘불공정하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런 이유로 ‘사법시험 폐지 반대’가 75%에 달했다.

현행 로스쿨 제도가 현대판 음서제(蔭敍制)라고 불릴 정도로 공정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시행 초기부터 불거졌던 사안이다. 입학부터 졸업, 변호사 채용 과정에 이르기까지 집안 배경과 부모의 영향력이 작용할 수 있는 개연성이 많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대학 졸업 후 3년간의 시간과 수억원이 드는 학비·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는 계층은 그리 많지 않다. 첫발부터 ‘기회의 공정성’이란 측면에서 서민층에 불리하다. 졸업 과정에서 부실한 학사 관리로 인한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졸업 후 변호사 채용 과정의 불투명성 때문에 탈락자들이 수긍하기 어려운 구조다.

유일한 공인시험인 변호사시험 성적은 영원히 비밀이다. 성적이 공개되는 사법시험과 달리 애초부터 패자가 결코 승복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사법시험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모든 사람에게 문호를 개방했다는 측면에서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법치국가의 명분에 충실했다. 고시 낭인 양산이나 다양한 인재 충원 등의 문제점도 노출했지만 로스쿨처럼 법치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공정성 시비는 없었다. 단점으로 치면 “사법시험은 피부병이요, 로스쿨은 심장병”이란 어느 법조인의 지적이 가슴에 와 닿는다.

변호사 채용 시 선망의 대상인 대형 로펌은 고수익 사건 수임에 유리한 ‘고관대작’의 자녀들을 선호한다는 것은 법조계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다. 로스쿨 제도가 부(富)의 상속을 뛰어넘어 사회적 지위의 원천을 만드는 수단이 됐다는 지적에 많은 국민들이 수긍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신분사회에서나 가능했던 부와 지위의 대물림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은 국가의 앞날을 위해서 불길한 징조다. 계층 이동이 경직될수록 그 사회는 위험해진다.

더 우려되는 것은 올해부터 2012년에 졸업한 로스쿨 1기생들의 판사 임용이 본격화된다는 점이다. 대법원이 법관 임용지원자 평가 기준으로 제시한 전문성과 정의성, 균형감각 등 10개 항목의 기준은 너무도 추상적이다. 현재로선 변호사와 검사 채용 과정에서 일어났던 공정성 시비가 재연될 소지가 다분하다. 법조 카르텔을 깨고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양성해 질 좋은 법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로스쿨의 도입 취지는 상당 부분 희석되고 있다. 다양한 경력의 인재들은 안정된 직장을 버리지 않았고 대신 학점이 우수한 문과 학생들만 노크하는 실정이다.

법조인 양성 시스템부터 공정성 시비가 불거지는 것은 법치국가의 근본을 허무는 엄중한 사태다. 국가 존립의 마지막 보루인 법조계마저 바로 서지 못하면 국가가 흔들린다.

이제 국회가 나설 차례다. 현재 변호사법 개정안 4건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모두 여당 의원들이 발의한 것이다. 2007년 로스쿨 법안 통과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새정치민주연합은 침묵하고 있다. 로스쿨 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지만 우선 2년 앞으로 다가온 사법시험 폐지를 막는 게 급선무다. 잘못된 궤도를 바로잡는 것은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사법시험 존치 여부는 여야 모두에 국회의 존재 이유를 묻는 시험대다.

oilman@seoul.co.kr
2015-05-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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