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작부터 ‘미국의 자존심’으로 통하는 후버댐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진다.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입간판이 하릴없이 산 밑으로 굴러 떨어지고,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가 엿가락처럼 늘어지다가 툭 끊어지며, 건물 15층 높이까지 차오르는 쓰나미가 도시 전체를 덮친다. 실제 미국 서부에서 이러한 대지진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대재난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영화의 설정은 충격적이고 소름 끼친다. 실제로 모든 것이 붕괴되고 파괴되는 장면은 공포스럽다.
이 과정에서 레이는 별거 중인 아내 엠마(칼라 구기노), 큰딸 블레이크(알렉산드라 다드다리오)를 구하기 위해 쓰나미를 타고 넘고, 무너져가는 건물 틈바구니를 뚫으며 물에 잠겨가는 건물 안으로 몸을 던진다. ‘샌 안드레아스’는 재난 블록버스터를 표방하지만 실상은 평범한 가장이 갖는 책임감의 무게를 밑자락에 깔고 있고, 개인들이 최후의 순간 함께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말하고 있다.
영화의 서사 자체는 빈약하지만, 빈곤한 드라마를 상쇄할 만한 컴퓨터그래픽(CG) 작업은 덧댄 흔적 없이 정교하게 이뤄졌다. 대리 체험만으로도 대참사의 긴장감과 처참함을 한결 더하게 만든다. 영화 제작의 의도와는 전혀 관계없을 문제이지만, 여전히 2014년 4월 16일 참사에서 자유롭지 못할 한국사회에서 일부 관객들이라면 바닷물에 잠겨가는 딸 블레이크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
사실 영화의 짜릿함은 재난 그 자체가 주는 것이지만, 진짜 비참한 현실은 재난 그 이후에 펼쳐진다. 한데 영화는 수없이 많은 이의 죽음과 도시의 궤멸을 뒤로 하고 숱한 우연의 연속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갑작스레 희망을 얘기한다. 금문교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대형 성조기가 나부끼고, 사람들은 손을 맞잡고 기도한다.
주인공 레이는 “이제 뭘 해야 하지?”라는 아내의 질문에 “이제 다시 세워야지(Now we build)”라고 대답한다. 미국의 재건을 뜻하고, 또한 해체됐던 가족의 복원을 얘기하는 장면이다. 어떻게 해도 잊을 수 없는 참사 앞에서 실낱 같은 생존의 가능성을 뚫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희망을 기약하는 것이 자연스러울지도 모를 일이지만 진부한 결말이라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6월 3일 개봉. 12세 관람가.
박록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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